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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준 칼럼
<칼럼> 피곤해요. 간 때문일까요?
배상준 외과전문의 / 여행작가 / 맥주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0/07/02 [11:38]  최종편집: TIN 뉴스 이 기사 후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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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한 이유가 간 때문이라고 처음부터 접근하는 것은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이 많다. 피곤한 원인은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생활 습관의 문제일 가능성이 50% 이상이다. © TIN뉴스

 

 

만일 당신이 의사라고 상상해 보자. 이 더운 여름에 넥타이에 셔츠를 입고 흰 가운을 걸친 상상을 해야 한다며 피곤해하진 말자. 요즘 의사들은 난닝구 위에 셔츠 대신 반팔 근무복을 입고 진료할 수 있어 전혀 답답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가 증상을 이야기한다. “선생님, 요즘 자주 피곤해요. 왜 그런 걸까요?” 의사인 당신에게 첫 번째로 떠오른 피곤한 원인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환자에게 어떤 검사를 처방할 것인가? 15초만 고민해 보고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오자.

 

많은 분들이 환자가 호소하는 피곤함의 원인은 간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곤한 원인을 간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차두리 선수 덕분이다. 영화배우 박상원 아저씨 덕분에 초등학생들이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황, 천호식품 덕분에 산수유가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븝(?)이 없는 식재료가 되어버린 사연과도 비슷하다.

 

피곤함은 전 국민이 자주 경험하는 흔한 증상이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람 50% 이상이 1년에 한 번 이상 경험하는 소화 불량, 두통보다 흔한 증상일 수도 있다. 외과의사인 내게 다른 질환으로 진료 받은 환자들마저 ”요즘 너무 피곤합니다.”라고 종종 이야기할 정도로 흔한 증상이다.

 

국어사전에서 “피곤하다“를 찾아보았다. 『몸이나 마음이 지치어 고달프다』라고 나와 있다. 몸이나 마음이 지치어 고달픈 사람들이 많긴 많나 보다.

 

몸이나 마음이 지치어 고달픈 분들께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리고 싶다. 당신이 피곤한 원인은 간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선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웠던 필요조건, 충분조건을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 

 

또 잠시 당신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끔찍하겠지만, 조금만 참자. 수학 시간이다. 더 끔찍하겠지만 좀 참자. 수학 선생님께서 명제에 대해 설명중이다. 『q→p』에서 q는 충동적으로 화살을 쏴서 충분조건, p는 화살을 맞아 피가 나서 필요조건,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단어 개그를 20년째 구사하는 수학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외운 후 현실로 다시 돌아오자.

 

기억나지 않는다고 외면하진 말자. 아무리 공부를 안했어도 영어책의 명사 챕터와 수학책의 집합&명제는 모를 수가 없다. 어쨌건, 『q→p』가 참이라고 해도 『p→q』가 반드시 참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배워서 잘 알고 있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간이 나쁘면) 피곤하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해도 화살표를 반대로 바꾸어 『피곤하면 간이 나쁘다』는 명제는 반드시 참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한 신체 상황을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폐암 환자라면 기침을 할 수 있지만, 기침을 한다고 폐암 환자는 아니다.

2. 뇌종양 환자라면 머리가 아플 수 있지만, 머리가 아프다고 뇌종양 환자는 아니다.

 

물론 모든 의사들은 q(병명)→p(증상)을 교과서에서, 경험적으로 배운 상태로 필요조건 p(증상)를 듣고 진찰과 검사를 하여 충분조건 q(병명)를 끄집어낸다. 그게 진단이라는 과정이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흔한 경우부터 감별해야 하고, 가장 기회비용이 덜 드는 검사부터 처방해야 한다고 배웠다. 설사 몇 번 했다고 크론씨병 검사를 추천하지 않고, 피곤함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몸에 중금속, 독소가 쌓여 있다며 처음부터 디톡스 치료를 권유하지 않는 이유다.

 

q(병명)→p(증상)일 때, 필요조건 p(증상)의 원인을 아주 드문 충분조건 q(병명)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환자에게 드문 가능성을 첫 번째로 제시하며 접근하는 아주 고급 기술이다.

 

아침 방송 패널 중 한 분이 살이 잘 안 빠진다고 고민하는 환자에게 임파선부종일 수 있다고 말하면 방청객들은 새로운 치료법을 알았다는 듯이 “아~”하며 탄성을 연발한다. 그리고 많이 먹어 뚱뚱한 지인에게 살 찐 것이 아니라 임파선부종이라고 카톡을 보낸다.

 

드문 가능성이긴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 얻어 걸리는 경우도 있다. 1할 타자가 박찬호 선수의 공을 눈감고 맞춰 홈런을 때릴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환자 입장에서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간이 나쁘면 피곤할 수 있다. 하지만 피곤한 이유가 간 때문이라고 처음부터 접근한다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이 많다. 피곤한 원인은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생활 습관의 문제일 가능성이 50% 이상이다. 여차저차 보이지 않는 간에게 핑계를 대는 것임을 이해한다.

 

진단 받은 간질환이 없었다면 용왕님 앞도 아닌데 내 간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자. 당신의 간 기능에 대한 평가는 1,2년마다 돌아오는 직장 정기 검진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배상준 외과전문의 / 여행작가 / 맥주칼럼니스트  © TIN뉴스

 

 

 

 

 

배상준

외과전문의 / 여행작가 / 맥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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