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기원 어쩌면 이리 비슷하지? ①

[연재] 와인-엉뚱한 호기심 : 섬유패션 vs 와인 (1편 : 고대~중세초반)

TIN뉴스 | 기사입력 2022/08/11 [09:56]

▲ 정기훈 덕성인코 대표     ©TIN뉴스

태초의 인류는 생존을 위한 의식주 해결을 위해 자연 환경에 있는 그대로를 활용했다. 수렵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찾아 다녔으며, 식물과 동물가죽 등으로 몸을 감싸고 동굴이나 움막에서 추위와 주변위협을 이겨냈다.

 

장구한 인류 진화과정을 살펴 보면 인간이 의식주를 위해 능동적 방식으로 경작과 제조를 시작한 시점은 그리 멀지 않다.

 

기원전 1만여 전 신석기시대에 동물의 털을 엮어서 가공된 원단형태로 옷을 만들어 입었던 고고학적 기록이 인류 최초의 옷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던 식량조달이 생산형 경작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라는 다양한 추론과 과학적인 연구가 있다.

 

인류의 농경과 섬유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와인의 역사 또한 비슷한 상황논리로 상상해보면 “우연한 발견”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냥과 채집으로 숲 속을 헤매던 원시인이 우연히 포도나무 근처 바위사이에 열매가 떨어져 고여 있던 붉은 색 액체를 발견하고 이를 마셔보곤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이완되는 듯한 야릇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인간이 와인을 발견한 최초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류의 생명유지의 근원인 먹거리, 입을 거리, 마실 거리는 비슷한 발견과 변화 발전의 역사적 배경을 같이 하고 있다.

 

이후 선사시대의 섬유와 와인의 변천의 역사는 유물이나 과학적인 고고학 연구에 의해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해졌다. 기원전 5000년경에 인도에서 면섬유로 직조된 원단이 만들어지고, 4500년경 이집트에서는 아마 섬유로 엮은 옷감이 등장했다.

 

또 4000년경 중국에서는 누에고치에서 실크를 뽑아 고급원단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비슷한 시기 중앙아시아 몽골지역에서는 양의 털을 엮어서 만든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렇게 발원된 4대 천연섬유는 현재까지도 의류패션의 주요소재로 대량생산과 소비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중국에서 발원한 고급 비단원단은 동서양 교역의 주요거래 품목이 되면서 동서양 교역로가 “실크로드”로 통칭하게 될 정도의 상징성을 갖게 된다. 의복소재인 면섬유와 마섬유 그리고 양모, 실크 등의 교환과 거래로 시작한 실크로드는 15세기 대항해시대 이전까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요 통로로 문명과 문화, 기술, 예술 등의 전파 통로였으며, 정복과 탈환, 수탈의 역사가 녹아 있는 현장이기도 했다.

 

페르시아 제국, 십자군 원정, 징기스칸의 진격,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등 동서양을 관통하는 대전환의 역사가 의생활 섬유소재의 지역별 다양성으로부터 시작된 비단길로부터 잉태되었다고 하면 침소봉대일까?

 

와인의 발원과 전파경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연히 발견된 포도 알코올 음료를 누가 최초로 만들어서 음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최초로 노아가 대홍수 이후에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을 빚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를 인정하기에는 종교적 신념이 동반되어야 할 것 같다.

 

또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바카스) 신이 와인을 창조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 또한 상상속의 이야기일 뿐 사실로 믿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현재까지 가장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최초의 와인은 기원전 60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코카서스 지방의 흑해 연안(현재 조지아- 예전 그루지아)에서 발견된 유적인 항아리에서 포도씨의 DNA가 확인되었다. 

 

▲ 그림 1 와인DNA가 발견된 항아리 (Kvevri) 출처: www.winesgeorgia.com  © TIN뉴스

 

이는 2015년 조지아 국립박물관과 토론토대학의 공동 연구로 밝혀졌으며, 2017년 영국BBC 방송에서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발견된 위치가 문명사적인 합리성이 있고 현재에도 조지아에서는 와인 양조 숙성용으로 “크베브리(Kvevri)”라는 옹기 항아리를 여전히 땅속에 묻고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조지아 기원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과학적인 해석이다. 

 

실제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기에 너무나 오래된 과거이지만 인류가 가공을 시작한 기원의 역사가 이집트의 면섬유나 와인의 양조가 비슷한 시기에 걸쳐 있었다는 추정은 가능하다. 이후 와인의 전파와 섬유소재의 교류와 확산이 이어지는 과정과 경로를 역사적인 근거와 자료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인간의 결핍에 대한 욕망은 선량한 의지에 기반한 교류와 협력 등의 온건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려 하지만, 언제나 선의 만으로 상대 것을 탐하지는 않았다. 실제 지배자의 과욕은 수많은 전쟁으로 정복과 지배가 이어지고, 강압에 의한 수탈은 생활문물의 이전속도를 가속화시켰다.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개척된 실크로드의 교역로도 침략의 진출로가 되기도 하고 패배의 퇴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 서로의 문물과 생활방식은 전파되고 교환이 이루어졌다.

 

기원전 4세기에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페르시아가 일으킨 침략전쟁은 다리우스 1세가 터키, 이집트, 인도까지 정복을 하고 그의 아들이 그리스까지 전쟁을 일으켰다. 마라톤으로 유명해진 전쟁이기도 했으나, 14년간 이어진 전쟁은 문물의 급속한 이동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병사들의 사기증진과 전투력 강화를 위한 코카서스 지방의 와인은 군인들과 함께 이동했을 것이고, 현지에는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포도의 식생과 양조기술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집트의 마섬유나 인도의 면섬유도 본국으로 가져왔을 것이다. 

 

특히 3차에 걸쳐 치열하게 치러진 그리스 침략 전쟁에서는 더욱 많은 와인이 운송되고 현지에 포도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지금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발원한 양조기술이 페르시아의 침략루트를 따라 이란, 이집트, 그리스로 전달되었고, 이는 로마를 거쳐 독일, 프랑스, 스페인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인도의 면직물과 이집트의 마직물도 와인처럼 작물과 제조기술이 자연스럽게 전파되었을 것이다.

 

와인의 종주국으로 인식되는 프랑스도 기원전 50년경 로마제국이 정복한 갈리아(프랑스)의 부르고뉴 지역과 로마로 해상운송이 용이한 보르도 지방에 집중적으로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을 생산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이태리는 현재의 프랑스 와인의 유명세에 매우 못마땅해한다. 이태리를 여행하거나 현지인을 만나면 프랑스 와인얘기를 꺼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의 경험상 프랑스 와인얘기를 꺼내는 순간 축구경기 이상으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경험은 오히려 필자가 프랑스와 이태리에서의 와인역사의 성장 변화 발전을 비교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호기심을 키웠다. 섬유패션산업에서도 양국의 자존심 경쟁이 보였다. 향후 이를 함께 엮어서 비교해 보기로 하겠다.

 

페르시아지역에서 기원한 와인은 그리스, 로마제국의 번성과 함께 유럽전역(특히 프랑스, 스페인)으로 퍼져나갔고, 로마 지배자는 포도나무 재배와 와인의 대량 생산을 독려 했고 이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또한 기독교의 성장과 함께 종교의식에 성찬주로서 와인의 위상은 높아만 갔고,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로 비유된 빵과 와인은 성스러운 가치를 부여 받게 된다.

 

기원후 4세기에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리가 되고,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와인산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통합국가에서 봉건체계로 바뀌어 버린 군웅할거의 서유럽 시대에 와인산업의 중심은 대중소비에서 성당과 교회, 수도원 등의 종교시설로 편입하게 된다. 포도의 재배와 양조기술은 성스러운 종교활동의 일부로 여겨지며, 수도사들의 노력과 현신에 힘입어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중세시대 와인산업의 중심에 성직자와 수도사가 서게 된 역사적인 배경이다. 이 시기의 복식문화도 페르시아부터 서유럽 전역에 걸쳐 목화 솜과 마섬유가 재배되어 옷감이 만들어졌으며 양모섬유들을 활용한 펠트원단 등이 다양하게 활용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최고 품질의 린넨은 프랑스산, 양모는 영국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7세기초  페르시아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마호메트의 등장과 함께 이슬람교의 창시로 헤게모니의 대전환을 맞게 된다. 651년 페르시아의 패망 후 이슬람국가는 새로운 종교국가로 주변국을 제압하며 제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음주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이슬람교리에 따라 와인 뿐 만 아니라 술과 관련된 역사는 중동지역에서 영원히 지워지게 된다. 

 

그러나 발효주를 증류하는 기술의 원천이 이슬람의 화학기술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연금술의 Alchemy와 증류기의 Alembic, Al cohol 모두 아랍어 정관사 Al이 붙은 아랍어였던 것이다. 이슬람제국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8세기부터 동서의 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던 아랍은 실크로드를 통해 문화와 문물교류의 중심에 서게 된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기 전까지 문명사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 <좌측> 이슬람의 화학기술을 보여주는 그림 <우측> 아랍식 증류기 (Alembic) 모식도   © TIN뉴스

 

이슬람제국의 성장을 바라보던 유럽의 여러 봉건국가에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군으로 연합하여 1096년부터 200여 년간 간헐적으로 8차례의 원정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리스도교의 성지인 예루살렘과 주변지역을 이슬람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시작된 종교전쟁이었으나, 200여 년간 지속된 문화와 문물, 기술의 이전과 이동이 급격히 이루어진 교류의 가속화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십자군에 참여한 종교인들은 예루살렘 주변국의 다양한 포도종자를 가져오게 되고, 그것이 현재 서유럽 와인의 기초 포도품종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또한 화학기술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아랍의 연금술에서 파생한 증류기술은 유럽에서 증류주를 탄생시키는 원천기술이 되었으며, 영국의 양모 직조 기술이 동양으로 전달이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 전쟁이 문화와 문물의 교환의 매개가 된 것이다. 

 

이상으로 고대에서 중세초반까지의 섬유와 와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적인 서술을 마치고자 한다. 과거 역사수업시간에 교과서의 정사보다 뒷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 더 컸던 기억을 되새겨보면 다소 지루하고 따분한 내용일 수 있다고 자조한다. 다음 연재에서는 중세중반에서 근세까지의 섬유와 와인이 관련된 야사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어가고자 한다. 다음회를 기다리는 명분이 되기를 바란다.

 

정기훈 ㈜덕성인코 대표

섬유패션산업 발전과 함께하는 경제전문 언론 TIN뉴스 구독신청 >

이 기사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인터넷 신문사 'TIN뉴스' 발전에 쓰여집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포토뉴스
23 S/S 서울패션위크 므:아므(MMAM)
1/7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