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유통, “러닝 대목을 잡아라”

대한민국은 ‘러닝 열풍’, 국내 마라톤대회만 380개
나이키·아디다스 등 기존 전통강자 위협하는 ‘신흥 러닝브랜드’ 기세

TIN뉴스 | 기사입력 2024/10/11 [10:57]

대한민국은 ‘러닝 열풍’이다. 

퇴근 무렵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역 근처에는 러닝복장을 갖춰 입은 직장인 러너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소위 20~30명 이상 달리기를 즐기는 ‘러닝크루(Running Crew)’다.

 

취재진 역시 주말마다 10km 러닝을 시작한지도 2년이 넘었다.

아무런 장비 없이 시원한 한강변을 1시간 정도 달려 완주점에 도달했을 때 쾌감을 즐긴다.

러닝 열풍에 다이어트나 유산소 목적으로 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동시에 20명 이상 크루를 조직해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2023년 2~7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깅, 러닝 연간 경험률(1년 내 경험)이 2021년 23%에서 2023년 32%로 9%p 증가했다. 즉 100명 32명이 조깅, 러닝을 한다는 이야기다. 연령별로는 남성(36%), 여성(27%), 10대(38%), 60대 이상(27%)로 큰 차이가 없다. 전 연령대가 즐긴다는 이야기다.

 

2024년 3~4월 갤럽조사에서도 즐겨하는 운동은 러닝이 전체 3.4%로 나타났다. 달리기 인구는 170만 명, 이 중 30대 이상 달리기 인구는 21만 명으로 추산된다. 현재 국내 달리기 또는 러닝 인구를 정확히 집계한 데이터는 없지만 대략 150만 명 이상, 스포츠업계는 500만 명으로 각각 추산하고 있다.

 

이런 열풍 덕에 각종 마라톤 대회 접수는 최근 1분 컷, 1분이면 마감될 만큼 인기다. 마라톤 온라인에 따르면 올해 등록된 국내 마라톤 대회 수만 380개에 이른다. 여기에 네이버 밴드에 ‘러닝과 걷기’를 주제로 한 모임은 3년 새 77% 증가했다.

 

반면 골프 붐은 코로나 덕에 2022년 정점을 찍으며, 사그라지면서 골프의류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은 테니스와 러닝으로 옮겨 타면서 관련 의류나 용품매장은 호황이다.

러닝화 열풍은 매출로도 확인된다.

 

무신사에 따르면 7월~9월까지 3개월 간 러닝화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동기대비 53% 이상 급증했다. 더위가 풀리면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에 접어들면서는 전년 동월대비 80% 가량의 연간 성장률을 기록했다. 무신사 측은 “건강을 위해 러닝을 취미로 삼는 2030이 늘면서 러닝화 전문 브랜드를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고, 개인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나 니즈도 다양화하면서 시장은 세분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리세일 플랫폼 크림의 러닝화 랭킹에 따르면 10월 4일 기준 거래량 TOP10은 나이키, 아디다스, 온러닝, 아식스, 호카 등 기존 전통 강자 외에도 신규 브랜드들이 대거 포진했다.

 

이러한 러닝 열풍에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수 즉 러닝 브랜드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러닝용품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호카(Hoka), 데카트론(Decathlon), 온러닝(Onrunning), 아식스, 뉴발란스 등이다. 그간 스포츠웨어와 용품을 장악했던 나이키, 아디다스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 러닝화 계급도

 

인증샷 문화에 ‘수십만 원 고가 장비 구매’

일부 유명 브랜드 품귀현상까지

 

처음 시작할 땐 반바지에 티셔츠, 운동화 등 단출하게 시작하다 차츰 장비 욕심이 생긴다. 때문에 러닝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누가 러닝은 돈이 들어가는 게 없냐”고 되묻는다.

 

취재진 역시 여름 러닝복장 기준으로 러닝 고글(3만 원), 러닝화(6만9,000원), 숏팬츠(1만 원), 레깅스(1만5,000원), 양말(1만 원), 허리색(2만 원), 모자(1만 원), 러닝셔츠(3만5,000원) 등을 합하면 대략 15만 원 이상이 훌쩍 넘는다. 겨울로 넘어가면 팬츠, 레깅스, 러닝셔츠에 바람막이나 경량 패딩을 추가하면 20만 원 이상으로 가격이 뛴다. 사실 운동화와 러닝셔츠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명 브랜드가 아닌 가성비 제품임에도 이 정도의 비용이 든다.

 

고가 장비 탓에 풀 착장한 모습에 기가 죽는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 일부 러닝크루의 경우 유명 브랜드로부터 선수용 장비를 경쟁적으로 사들이기도 한다. 때론 고가 장비 구매를 회원들에게 강요하다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여기에 스포츠 브랜드들도 유명 러닝 관련 유튜버들에게 러닝 용품을 제공하며, 제품 홍보를 제안하거나 PPL 목적의 제품 제공이 빈번해지면서 관련 언박싱 영상들도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다.

 

일부 러닝화나 고글 등은 30~40만 원 이상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품귀 현상까지 빚어 일부 중고거래로 웃돈을 얹어 사들이기도 한다. 특히 한동안 각종 러닝 관련 유튜브 영상과 입소문을 탔던 카본 러닝화의 경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기다. 러닝화 무게가 가볍고 통기성이 좋은 데다 유명 브랜드여서 과시용으로도 제격이다.

 

그러나 러닝 전문가들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선수가 아닌 아마추어들에게도 불필요하다. 러닝화는 각자의 발모양이나 크기 등을 고려해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 같은 과시용 장비 구매 열풍은 MZ세대의 골프 열풍과도 비슷한 양상이다.

‘인증샷 문화’가 이 같은 고가 구매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야지”, “기죽으면 안 되니까” 등등의 집단 심리 측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 ‘러닝스타그램’, ‘러닝크루’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달리는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유행이 되면서 관련 게시물은 61만 개에 이른다. 급기야 달리기 인증샷을 찍는 앱까지 등장했다.

 

‘러닝화 계급도’…성능별로 줄 세우기

 

‘러닝화 계급도’도 등장했다.

러닝화의 성능에 따라 계급을 나눈 것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다나와’와 러닝 인플루언서 안홍구(닉네임: 멸치)씨의 자문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상급 레이싱화부터 입문자용까지 월드 클래스, 국가대표, 지역대표, 동네대표, 마실용 등으로 구성했는데 매우 직관적이다. 안홍구씨에 따르면 세계 6대 마라톤 서브3(풀코스 42.195㎞를 3시간 이내 완주 기록) 주자들이 착용한 러닝화 통계와 주요 마라톤 대회 입상 주자가 착용한 러닝화를 참고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홍구씨는 인터뷰에서 최근 신진 러닝화 브랜드 선호 현상에 대해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주로 선점했던 최상급 레이싱화 부문에서 경쟁하기보다 일반인들이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일상용 러닝화를 개발하고 기존 레이싱화에서 부족했던 디자인과 편안함을 공략한 것이 지금의 인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 스위츠 스포츠 브랜드 온(On)이 국내에 운영 중인 러닝 커뮤니티 ‘얼웨이즈 온 런(AOR)’

 

스위스 러닝화 ‘온’, 韓 진출 초읽기

 

이러한 장비 열풍에 해외 러닝 브랜드들도 속속 한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러닝화 브랜드 중 하나인 스위스 스포츠 브랜드 온러닝의 ‘온(On)’이 한국 직진출을 앞두고 러닝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 매장 설립 등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앞서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온은 8월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도심을 함께 달리는 러닝 커뮤니티 ‘얼웨이즈 온 런(AOR)’을 운영 중이다. 커뮤니티 참가자들에게는 온 러닝화를 착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해 인기다.

 

온은 2023년 말 국내 법인 ‘온코리아’를 설립하고 올해 7월 롯데백화점 본점 내 러닝 전문 매장 ‘소우(S.O.W)’를 입점 시키는 등 국내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 단독 매장은 일본 도쿄 시부야점이 유일한데 내년 초 국내에도 단독 매장 오픈을 검토 중이다.

 

온 러닝화는 착지 시 충격을 덜어주는 ‘클라우드 텍’ 기술을 적용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고 착화감이 편안해 서구권에선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위협하는 러닝 브랜드로 인기다. 특히 쿠션 부분에 구멍이 뚫린 독특한 디자인으로도 인기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선수 출신의 창업자가 ‘발이 편한 러닝화’를 목표로 만든 브랜드다.

 

온의 2분기 글로벌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28% 성장한 6억5,380만 달러로 한화 약 8,796억 원 수준이다. 이 중 한국이 속한 아시아·태평양 시장 매출은 74% 급증해 성장성이 주목된다.

 

이외에도 연예인들이 ‘내돈내산(내가 구매해 사용하는)’으로 입소문을 타다 편안한 착용감 때문에 부모님에게 사드리는 ‘효도템’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호카 러닝화’ 역시 인기다. 호카의 올해 1분기 매출은 5억3,300만 달러(약 7,187억4,400만 원)로 2023년 4분기 대비 34% 증가하며, 고성장 중이다.

 

▲ 신세계백화점 나이키 라이즈 매장/호카(Hoka) 성수 팝업 이벤트

 

신세계百, 스포츠 매장 새 단장

 

국내 패션 유통업계도 러닝 열풍에 맞춰 일부 스포츠 매장을 새롭게 단장했다.

대표적으로 신세계백화점 하남점이 10월 1일 나이키 매장을 디지털·퍼스널(개별화된) 경험을 강조한 ‘나이키 라이즈’ 매장으로 바꿨다.

 

이번에 리뉴얼한 매장은 기존 나이키 매장을 3.5배로 키운 530㎡(160평) 면적에, 기존에 없었던 러닝과 트레이닝 카테고리 상품을 대폭 들여온 것이 특징이다. 최근 여성 러너가 늘어난 것을 반영해 전체의 57%를 우먼스(여성) 품목으로 채웠다.

 

신세계백화점은 또 이달 광주신세계와 김해점에 각각 뉴발란스 초대형 규모 매장인 ‘메가샵’을 오픈한다. 기존 매장보다 3~3.5배 몸집을 키워 뉴발란스의 모든 카테고리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특히, 10월 18일 오픈하는 신세계광주 뉴발란스 메가샵은 337㎡(102평) 규모의 ‘러닝 특화 매장’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지난 8월 전국 뉴발란스 매장에서 오픈런이 벌어지며, 화제를 일으켰던 중·장거리 러닝화 ‘퓨어셀 SC 트레이너’를 비롯해 530SG와 2002RC, 1906REH 등 구하기 힘든 인기 모델을 단독 출시한다.

 

신세계백화점이 스포츠 매장 새 단장에 나서는 것은 2030세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달리기 열풍이 이어지면서 관련 매출이 급증해서다. 신세계백화점의 9월 러닝화가 포함된 ‘스포츠 슈즈’ 장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5% 성장했다.

 

러닝은 최근 가장 빠르게 저변이 확대되는 운동으로 꼽힌다. 1년간 조깅·러닝(달리기)를 경험한 비율이 2021년 23%, 2022년 27%에서 2023년 32%로 늘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재단장을 통해 최근 빠르게 느는 러닝 관련 상품 수요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9월 신세계백화점 내 러닝화를 포함한 스포츠 신발 매출은 전년 동월대비 36%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 패션 담당 관계자는 “스포츠 매출이 꾸준히 호조를 보이는 만큼 인기 상품은 물론 체험·경험적 요소를 채운 매장을 계속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러닝 코어(Running Core)’,

고가 러닝 아이템을 일상복과 매칭

 

한편 고가 러닝 아이템을 일상복에 매치하는 ‘러닝 코어(Running Core)’ 바람도 불고 있다.

실제 달리기를 할 때가 아닌 일상에서도 스니커즈 대신 러닝화를 신거나, 러닝할 때 입는 조끼, 스포츠 선글래스 등이 패션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버클과 스트랩이 달린 러닝 조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새티스파이, 스포츠 아이웨어 브랜드 디스트릭트비전 등이 대표적이다. 

 

러닝 카테고리에 전력 중인 신세계백화점 역시 “‘고프코어(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으로 입는 것)와 ‘블록코어(축구 유니폼에 영감을 받은 패션)’에 이어, 러닝복과 러닝 용품을 패션에 활용하는 ‘러닝코어’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새 단장한 매장들이 2030 젊은 층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러닝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취재진이 아닌 러닝을 즐기는 마니아로서 러닝은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운동이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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