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통상 관련 행정명령을 남발하며, 국제무역질서를 혼돈에 빠트리고 있는 트럼프의 행보가 거침없다.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을 겨냥한 보편관세를 시작으로 이제는 모든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추가 관세 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상호관세까지.
특히 상호관세는 ‘이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즉 외국이 미국제품에 매긴 관세만큼 미국도 똑같은 관세로 맞대응해 불공정 무역을 바로잡겠다는 의도다. 자국 이익에 위협이 되거나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FTA 체결국, 우방국할 것 없이 모두 트럼프의 사정권이다.
현재 상호관세 주요 대상국으로 EU, 베트남, 대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중 첫 타깃은 EU가 될 가능성이 크다. EU는 그간 미국 자동차에 10% 관세를 부과한 반면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에 2.5% 관세만 부과하는 불공정 무역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트럼프의 타깃이 베트남을 향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집계한 2024년 1~11월 기준 베트남의 대미 무역흑자는 1,116억 달러로, 흑자 규모는 중국, 유럽연합, 멕시코에 이어 4위다. 또한 한국, 대만, 태국, 캐나다와 함께 2018년 대비 미국 무역적자가 100% 이상 증가한 국가 중 하나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기간 이들 무역 흑자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실시간 화상 연설에서 “전 세계 기업들에게 전하는 내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다. 미국에 와서 제품을 만들라는 것”이며, “그러면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낮은 세금을 적용하겠다.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권리지만 다양한 금액의 관세를 내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관세는 우리 경제를 강화하고 채무를 갚는데 필요한 수천억 달러, 심지어 수조 달러를 우리 재정에 보탤 것이며, 필요하다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희생하면서도 미국 우선 공약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경고에 베트남 팜민찐 총리는 다보스포럼에서 “미국과의 무역 흑자를 재조정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 중이며, 우리나라에 이롭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하루 종일 골프를 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베트남 前 외무부 차관이자 前 주미국 베트남 대사였던 Pham Quang Vinh은 “트럼프 행정부는 더 많은 제조업체가 미국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고, 프렌드쇼어링 전략을 강화해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에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프렌드쇼어링 전략은 미국과 워싱턴이 친구로 여기는 국가들 사이의 생산 관계와 공급망을 구축하고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이러한 움직임은 이점과 과제를 모두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지 이점은 베트남과 미국 사이의 양자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베트남을 두 번이나 방문했으며, 지난해 대선 승리 이후 베트남 당서기장과 통화하는 등 특별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양국 간 경제적, 전략적 무역 이익은 서로 얽혀 있어 베트남 뿐 아니라 미국에도 경제적, 전략적 관점에서 이익이다. 양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베트남이 미국과 상당한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무역 적자는 여러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없고 여전히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베트남 상품은 미국에 유익하다.
Pham Quang Vinh은 “무역 적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 사항이며, 그가 언제 관세를 부과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베트남은 트럼프의 징벌적 관세 대상이 아니다. 대신 양국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런 대가 없이 관세를 부과하기보다는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에 관세 부과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 보단 당장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 대화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베트남은 미국이 팔려는 상품을 수입하고 무역 적자를 줄이는 데 집중하되 특히 상품 원산지에 관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하고, 공급원과 시장을 다각화하며, 수출용 베트남산 제품의 현지화율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미국 기업을 포함한 국내 및 해외 기업을 위한 사업 및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베트남, 트럼프에겐 안겨줄 선물 준비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관세 부과 움직임에 베트남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적극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2월 13일 팜 투 항(Pham Thu Hang)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언론의 미국발 관세전쟁에 대한 베트남의 대응 여부를 묻자 “미국과의 협상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팜 민 찐(Pham Minh Chinh) 총리가 최근 국무회의에서 글로벌 관세전쟁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 성장을 보장하기 위한 대응 시나리오 마련을 유관 부처 및 관계 기관에 지시했다”며 “이에 따라 베트남은 경제적 충격 완화와 국제교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세계정세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따라 베트남과 미국의 무역과 투자는 상호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큰 진전을 이루었다”며 “베트남은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미국과 교류를 유지하고, 정보공유 강화와 상호이해 증진으로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할 준비가 돼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베트남 내 외국기업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정부는 FDI(외국인직접투자)를 위한 지속적인 절차 간소화 등 유리한 사업 환경 조성을 통해 이들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장상식 원장도 2월 3일 한국섬유산업연합회(회장 최병오)가 섬유패션 리셋 주간 일환으로 주최한 ‘트럼프 2.0시대의 변화와 대응’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통해 섬유 수출기업들이 우려하는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보편관세 부과 영향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정상식 원장에 따르면 현재 아세안(ASEAN)이 글로벌 공급망의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즉 ‘인도+아세안’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을 배제하면서 아세안과 척을 둘 이유가 없다. “왜 우리가 중국 좋으라고 중국 물건을 사줘. 다른 나라에서 사면되지.” 그러면서 미국이 생각하는 국가가 인도와 베트남이라는 것.
지금 미국이 무역적자로 보는 국가 순위에서 베트남이 한국보다 조금 더 많다. 미국은 베트남으로 수출할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과의 무역적자 규모가 크지만 이는 베트남 탓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장상식 원장은 “베트남의 경우 중국은 미국을 배제하기 위해 베트남을 이용할 것 같고, 지금 늘어난 무역 적자에 대해서는 그 다음에 트럼프 1기 때 환율에 대해서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베트남 정부가 통화를 의도적으로 절하해서 미국의 수출을 늘렸다는 정도에서 미국은 베트남과의 협상을 원할 것이며, 베트남은 미국에 줄 선물을 갖고 있을 것이다. 베트남은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등 양국 간 큰 이견 없이 어느 정도 협상을 통해 원만하게 타결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정 원장은 “미국이 우리(베트남)에게 보편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중국보다 낮으면 승산이 있다. 만약 관세를 부과한다면 그때는 미국의 무기를 사오겠다는 이야기들이 베트남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면서 이는 베트남이 보편관세 부과 등 통상조치에 대비해 미국에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1월 17일 미국 상원에서 진행된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부장관 지명자(1월 27일 인준 통과) 인사 청문회에서의 지명자의 발언이다. 당시 상원 의원으로부터 “미국이 동맹국들한테까지 관세를 부과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스콧 베센트 지명자는 3가지의 이유를 밝혔다.
먼저 ‘불공정 무역 관행을 시정’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고, 두 번째는 ‘협상 도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부 수입(세수) 증대’라는 것.
협상 도구는 미국이 관세 부과를 무기로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의도다. 이와 연관지어 우리 섬유업계가 우려하고 있는 베트남에 대한 관세 부과의 경우 현재 베트남은 심각한 전력난 해결을 위해 원자력 발전 도입 재개를 결정한 이후 한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과 원전 2기 개발 관련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여러 후보국 중 1월 러시아 총리가 베트남 방문 당시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과 베트남전력공사가 원자력 분야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러시아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어디까지다 구속력 없는 업무협약 수준에 불과하다.
베트남 역시 원전 발전 도입을 미국의 관세 부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정부 수입 증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정책에 따른 세수 부족분을 관세로 메우겠다는 계산이다. 중국의 우회 수출 대비
섬유업계가 걱정할 건 중국의 베트남을 통한 ‘우회 수출’이다. 2015년 기준 약 2억6,000만~2억7,000만 달러 정도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갔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는 베트남 우회를 활용한 수출 규모로, 2023년에는 21억 달러로 8년 사이에 약 18억 달러 정도 더 커졌다.
전체 품목으로 보면 중국 기업이 의도적으로 베트남에서 제조해 미국으로 수출했거나 또는 베트남, 한국, 미국 기업이 중국 원자재를 베트남으로 구매해와 이를 조달해서 수출했을 수도 있다.
반드시 중국 기업이 그랬다는 건 아니다. 중국 제품이 중국 원자재가 베트남에서 가공되어 전 세계로 빠져 나갔는데 중국 제품이 베트남으로 들어와서 그 중 일부는 베트남 내수로 남고 상당 부분은 제3국으로 빠져나갔다. 이 중 3분의 1이 미국이다.
다음으로 ‘위구르 강제노동법’이다. 미국 세관에 따르면 2022년 10월~2024년 3월까지 중국산 섬유제품의 약 15%인 300만 개가 위구르산 면화 사용이 의심된다며, 통관이 거부됐다. 금액으로는 약 2,000만 달러. 동시에 베트남에서 들어온 섬유제품 중 통관이 거부된 것도 약 1,000만 달러에 달한다.
오히려 중국에서 들어온 것보다 베트남에서 들어온 제품에 대해 미국도 많은 검사를 하고 통관이 거부된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정부도 이러한 우회 수출에 주목하고 있다. 美 보편관세 부과 시 韓 피해, 우방국도 적고 비우방국보다 커
그렇다면 10% 보편관세 부과 시 한국의 피해는 얼마나 클까? 정상식 원장은 미국의 다른 우방국보다는 적지만 우방국이 아닌 국가들보다는 클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미국과 FTA 체결로 관세가 ‘0’이다. 그러나 10% 관세가 부과되면 거의 10배 이상의 효과다. 반면 베트남의 경우 기존 5% 관세에 10%를 더해 15% 관세를 매기더라도 결과적으로는 3배가 더 부과되는 셈이다. 10배와 3배의 차이다.
정상식 원장은 “한국이 미국 우방국 중 다른 우방국들과 비교해 피해가 적은 건 중국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귀환…섬유업계 대응전략
미국의 경우 섬유제품은 FTA 체결국가로부터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2024년 1~11월 기간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직물 규모는 3억2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10.2% 증가했다. 인도, 중국에 이어 3위다. 같은 기간 섬유제품 수입 규모는 17위다. 미국이 수입한 한국산 섬유제품 규모는 2억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13.2% 급감했다.
첫째, 트럼프 2.0 시대에는 중간 유통 단계가 줄어들고 미국 내 브랜드와의 직접 거래 확대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따라서 ODM의 경우 기능성 원단, 디자인 개발을 통한 미국 브랜드와의 협업 확대를, 미국 대형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 제품을 공급해 마진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각국 소비자의 해외 직구 확대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 소비자를 직접 타겟팅하는 D2C 전략을 강화하고 OEM→도매→소매→소비자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유통 구조대신 브랜드가 자체 온라인, 이커머스, SNS로 고객과의 직접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나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중견 브랜드를 인수해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M&A 전략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니클로의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의 미국 J Brand, Helmut Lang 인수, 미쓰이물산의 Pauk Stuart 인수, 중국 푸싱국제의 랑방그룹 인수 등이 대표적인 M&A 사례로 꼽힌다. 만약 M&A가 어렵다면 글로벌 브랜드와 공동 R&D 및 유통협력 목적의 Joint Venture나 라이선스 사업 추진이 차선책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통 섬유에서 고부가가치 제품과 첨단기술 제품으로의 전환이다. 정상식 원장은 “이제는 단순 제조사가 아닌 글로벌 공급망 및 브랜드 운영자로 진화해야 하는 시점”이라면서 “대기업은 특수섬유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고 중소기업은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소재, 색상, 디자인 등에서의 차별화로 바이어 요구를 충족하는 만큼 가격 경쟁력보다 제품의 독특한 가치 창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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