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산업인가, 문화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패션정책의 구조를 가르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패션 정책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합의 없이 ‘산업’과 ‘문화’ 사이에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현재 패션은 두 개의 축에서 동시에 지원된다. 하나는 산업통상부 중심의 산업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체육관광부 중심의 문화·콘텐츠 정책이다.
산업통상부는 패션을 ‘의류 산업’으로 본다. 이 관점에서 정책은 명확하다. 제조, 수출, 공급망, 그리고 디지털 전환이다.
대표적으로 ‘패션테크 활성화 및 비즈니스모델 구축 사업’, ‘패션테크 엑셀러레이팅 지원 사업’, ‘디지털 패션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으며, ‘All in Korea’, ‘글로벌 마케팅 지원 사업’과 같은 수출 중심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또한 ‘2026년도 섬유패션 기술력 향상 및 패션산업 지식기반화 구축 사업’을 통해 제조 경쟁력과 AI·DX 기반 산업 전환까지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분명하다. 패션을 ‘수출 가능한 제조 기반 산업’으로 보고, 밸류체인 전체 소재·생산·브랜드를 강화하는 것이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패션을 ‘콘텐츠’로 접근한다. 디자이너, 창작, 브랜드 스토리, 그리고 글로벌 무대에서의 문화적 영향력이 중심이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등을 통해 파리 패션위크 진출, 해외 쇼룸 입점, 패션코드 운영, 디자이너 액셀러레이팅 등 창작 기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전체 예산의 상당 부분이 디자이너 해외 진출과 유통 활성화에 집중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하나의 산업을 두고 완전히 다른 정책 철학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산업과 문화로 나뉜 정책은 ‘보완’이 아니라 ‘분절’로 작동하고 있다.
산업부는 “패션은 제조를 빼고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은 소재부터 봉제, 브랜드까지 이어지는 드문 풀 밸류체인을 가진 국가다. 그러나 제조 인력 고령화와 생산 기반 약화는 이미 구조적 위기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 문체부는 “패션은 창조산업이며 콘텐츠”라고 본다. K-팝, K-뷰티처럼 패션 역시 한류의 확장 영역으로 보고 있으며,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패션은 문화적 영향력과 직결된다.
이 두 관점 모두 틀리지 않다. 문제는 ‘둘 다 맞는데, 하나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현재의 패션 정책 구조는 산업통상부가 제조·수출·공급망 등 산업 기반을 중심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디자이너·콘텐츠·브랜드 등 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서울시가 인프라 구축과 행사 운영을 중심으로 각각 역할을 나눠 담당하는 방식으로 형성돼 있다.
실제로 2026년 기준 패션 관련 예산은 서울시 약 318억 원, 산업통상부 약 234억 원, 문화체육관광부 약 113억 원 규모로 분산돼 집행되고 있다. 각 주체가 일정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관통하는 통합 전략이나 일관된 정책 방향은 부재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패션을 산업으로 볼 것인가, 문화로 볼 것인가. 이 질문을 피한 채 정책을 이어가는 것은 더 이상 어렵다.
해외는 이미 답을 내렸다. 영국과 EU는 패션을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으로 분류한다. 영화, 게임, 음악과 같은 정책 틀 안에서 다루되, 산업적 가치까지 함께 포함한다. 즉 ‘문화냐 산업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문화 기반 산업’으로 통합한 것이다.
한국도 방향을 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부처별로 나눠서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컨트롤타워 아래에서 통합 전략을 가져갈 것인지.
물론 단순한 부처 통합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누가 전체를 설계하고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필요하다.
패션은 더 이상 단순한 의류가 아니다. 제조, 기술, 콘텐츠, 브랜드, 그리고 문화가 결합된 복합 산업이다. 그렇다면 정책도 그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패션은 산업인가, 문화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루는 한, 한국 패션의 경쟁력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
김상현 취재팀장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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