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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9] 대한그룹 설경동(薛卿東)
“판단이 빨라야 실기(失機)하지 않는다”
기사입력: 2020/01/20 [09:34]  최종편집: T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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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뉴스

대한민국 경제성장 뿌리

섬유패션산업 큰 별을 찾아서

 

대한그룹 창립자
인송(仁松) 설경동(薛卿東)
1903~1974 

 

▲ 인송(仁松) 설경동(薛卿東)  

인송은 사업을 맺고 끊는데 있어서 늘 과감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광복이후 북쪽에서 했던 수산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역경 속에서 방직, 전선, 식품사업의 가능성에 투자해 재기에 성공한 것은 이러한 삶의 신조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대한방직, 대한제당, 대한전선 등을 운영하며 한때 재벌 서열 4위에 올랐던 대한그룹의 창립자 인송은 동학혁명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1903년 3월 19일 경주 설씨 가문이 5대째 뿌리를 내리고 있는 평안북도 철산군의 마을에서 가난한 선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머니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방과 후에 떡을 팔고, 등교 전 새벽신문을 돌리는 등 고학으로 5년 만에 중학교를 마치고 동경 대창상고에 입학한다.


사업에 필요한 기초지식만 쌓으면 된다는 생각에 유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나들면서 쌀을 팔아 10여년 만에 함경도 일대를 주름잡는 미곡상으로 이름을 날린다.


어느 정도 사업자금이 확보되자 1936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정어리잡이 배 3척으로 동양수산회사를 설립한다. 이후 어선 70척에 비행기로 어군을 탐지할 정도의 함경도 거부로 성장한다.


8·15광복 후 공산군이 주둔하면서 친일파로 몰려 동양수산을 뺏기자 어선 몇 척과 함께 월남길에 오른다. 이후 재산을 처분한 돈으로 해산물 수출회사인 대한산업을 설립하고 적산가옥·토지를 헐값에 불하받아 시세차익을 남기며 파는 원동흥업을 설립, 본격적으로 부를 축적한다.


이후 회사들이 계속해서 번창하자 수원의 성냥공장을 인수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남한시장을 석권했다. 6·25전쟁으로 전 재산이 불길로 사라지고 말았으나, 1953년 방직공장을 인수하여 대한방직주식회사를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설립, 근대적인 경영을 시작한다.

 

 1960년대 산업시찰단과 방미한 설경동 회장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TIN뉴스


산업화 초기 우리나라 국가 경제를 일으킨 주요 수출산업 중 하나로 정책적인 보호를 받는 방직업을 통해 재벌에 오르는 근간을 마련한다. 1954년 10월 수원공장에 방기(紡機) 1만 추 등 시설을 갖추어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1955년 8월에는 대구에 공장을 추가로 준공하고 방기와 직기(織機) 시설을 갖추었다. 1954년에는 대한전선을 불하받았으며, 1956년에는 대동제당을 설립한다.


정계에도 진출하여 자유당 재정부장이 되면서 수많은 정치자금을 관리했는데 이 같은 이력 때문에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때 다른 재벌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리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후에는 정부의 기간산업 건설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대한전선의 시설확충에 전력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텔레비전·냉장고 등 전자제품 생산과 호경기에 힘입어 그의 기업체군은 대한재벌로 불리게 됐다. 1972년 건강문제로 설원식(薛元植)을 비롯한 2세들에게 사업기반을 물려주고 2선으로 은퇴했다.


인송은 북한에서 월남한 실향기업인으로 5·16군사정변 이전까지 우리나라 10대 재벌에 올라간 자수성가형의 기업가로 1948년 무역협회 부회장, 1953년 대한방적·원동흥업(遠東興業), 1954년 대동증권, 1954∼1972년 대한전선(大韓電線), 1956∼1972년 대한제당(大韓製糖) 등을 창업하여 그 사장을 역임했다.


또 1956년 증권협회 회장, 1958년 방적협회 이사장, 196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1970년 인송문화재단 이사장, 1972년 대한제당·대한전선의 회장 등도 지냈다. 산업훈장(동탑)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특히 경영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나라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아 해방 직후 생필품 부족으로 곤란에 빠진 국민들을 걱정해 성냥 사업을 선택하고, 1955년 조선전선을 인수해 대한전선을 창립할 당시에도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투자를 결정했다.


자신이 겪었던 고난과 역경을 후대에는 더 이상 전하지 않으리라는 뜻에서 1970년 사재를 출연해 ‘인송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조국의 인재 육성에 있어서도 아낌없이 투자하며 참다운 경영인의 모습을 보였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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