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공급망 실사, 법안 발표 지연

유럽 산업계 로비…6월에서 10월 다시 12월로 두 차례 연기

TIN뉴스 | 기사입력 2021/11/28 [22:09]

환경·인권에 EU 차원

실사 의무화 법안 마련, 12월 중 초안 공개 전망

글로벌 공급망의 통합적 관리 통해 EU 실사 법안 대비할 필요

 

 

유럽연합(EU)의 공급망 실사 법안 발표가 역내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두 차례 연기됐다. EU는 지속가능성을 기업의 생산 활동에 반영코자 공급망 전반에 걸쳐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공급망 실사’는 기업이 전 공급망 내 납품·협력업체 인권과 환경에 대한 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문제 발견 시 이를 시정 및 해당 내용을 공시하는 제도다.

 

EU의 공급망 실사는 2020년 4월 집행위 사법총국 위원인 디디에 레인더스(Didier Reynders)가 법안 도입 계획을 발표·추진된 후, 2021년 3월 유럽의회에서 공급망 실사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집행위 법안 작업이 본격 가속화됐다. 

 

집행위의 공급망 실사 법안 초안 발표 시기는 당초 2021년 6월로 예정됐었으나 10월 27일로 한 차례 연기된 후 최근 12월로 지연되며 두 차례나 미뤄졌다. 이는 유럽 산업계의 강력한 로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EU는 유럽의 기본정책 방향이자 최우선적 가치인 지속가능성 구현을 위해 정책 수립 시 이를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2019년 12월 출범한 집행위 현 정부의 6대 우선분야인 ▲그린딜 ▲사회적 공정성·번영 ▲유럽 가치·법치 준수 ▲디지털 전환 ▲민주주의 ▲국제사회에서의 EU 영향력 강화 중 그린딜과 사회적 공정성·번영, 유럽 가치·법치 등 3개 분야가 지속가능성과 연계돼 있다.

 

또한 EU는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데, 최근 EU가 수립했거나 현재 마련 중인 정책으로는 ▲EU 분류체계 규정(Taxonomy):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판별하는 EU 기준으로 기준에 부합하는 프로젝트 중심의 민관 투자 촉진(2020년 7월) ▲지속가능 금융공시 규정(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 금융기업 투자 상품에 대한 지속가능성 정보 공개(2019년 11월) ▲비재무 정보보고 지침(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 비재무재표 통해 기업의 환경 및 사회적 영향 공개(2021년 4월) 등이며, ▲산지전용 및 삼림훼손 방지 위한 공급망 실사 의무 법안을 마련 중이다.

 

현재 EU의 공급망 실사체계는 역내 통일된 실사 기준이 없고 회원국별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국별 적용 중인 실사 대상, 범위, 제재 등이 다소 상이하다. 이에 EU는 이러한 기준들을 역내 차원으로 조화 및 통합시키고 일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2020년 2월 EU 집행위가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사를 이행 중인 역내 기업 총 334개사 중 37%만이 인권과 관련된 실사를 수행하는 등 현행의 자율적 실사체계로는 EU가 원하는 인권보호 수준 도달에 역부족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공급망 실사에 대해 법적인 구속력을 부여해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기업의 법적 의무를 강화하고 역외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역내 공급망 실사를 채택한 회원국으로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이며, 프랑스가 2017년에 실사법을 채택하면서 회원국 중 가장 빨리 실사를 도입한 후 네덜란드(2019년), 독일(2021년) 등이 실사 법안을 채택했다. 

 

이외에도 현재 스웨덴, 오스트리아, 핀란드, 덴마크, 룩셈부르크 등에서 법안 도입을 검토  중이다. 회원국별 실사 법안의 내용은 다소 상이한데 프랑스의 경우, 인권 및 환경 분야로 가장 넓은 범위의 실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독일은 인권 분야를 대상으로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아동노동 분야에 한정하고 있다. 또한 기업이 실사 이행을 위반하는 경우에 프랑스와 독일은 과징금 또는 행정제재에 그치는 반면,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아동노동 분야로 대상이 한정된 만큼 형사처벌까지도 규정하는 등 보다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업계, 직접 관계 기업에만 실사 적용 요구

중소기업의 경우 대상에서 제외 또는 불가피한 경우 

보다 완화된 규제 적용 및 기업 지원방안 마련해야 

 

 

그렇다면 유럽 산업계 입장은 어떠할까?

2021년 3월 10일 유럽의회는 찬성 504표, 반대 79표, 기권 112표 등 과반수로 EU 공급망 실사 관련 결의안을 채택하며, 결의안(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 및 기업책임(Corporate due diligence and corporate accountability)) 내용을 반영한 EU의 실사 법안을 수립할 것을 집행위에 요구했다. 

 

결의안 내 실사 적용 분야는 ▲인권(사회권·노동권·노조) ▲환경(기후변화·삼림 등) 및 ▲거버넌스(부패·뇌물 퇴치 등)이며, EU 역내에서 활동하는 기업과 이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공급업체들이 실사 의무의 대상이 된다. 이 밖에도 유럽의회는 대기업뿐 아니라 상장 중소기업과 위험 산업군 중소기업도 대상기업에 포함시켰다.

 

실사 대상이 되는 기업들은 전 공급망 내에서 인권·사회·노동권, 환경, 거버넌스에 미치는 잠재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식별 후 시정해야하며, 기업 홈페이지 등에 관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실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총 매출액에 비례한 과징금이나 EU 공공조달 입찰제한, 보조금 및 수출신용 등 공적지원 접근이 제한되는 행정조치 등이 내려질 수 있으며, 세부적인 제재조치는 회원국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한편, 유럽의회는 입증책임 전환을 두고 인권침해 및 환경훼손 피해자 기업의 의무위반을 입증하지 않고 기업이 면책을 위해 실사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음을 증명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효과적인 실사를 위해 회원국별 감독기관을 지정해 실사를 감독하는 한편, 역내 관련 플랫폼을 개설해 협력체계 구축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집행위는 이 같은 의회 결의안을 반영한 공급망 실사 법안의 조속한 수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대상적용 기업 및 대상 분야, 제재조치 범위 등에 대해 역내 업계의 반대가 심해 좀처럼 쉽게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10월 26일~2021년 2월 8일 집행위가 진행한 공급망 실사 의견수렴 과정에서 기업·협회 등 무려 364개에 달하는 산업계가 관련 의견을 제출하는 등 EU의 실사 법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다. 역내 업계는 의회가 채택한 결의안 내 실사 적용 대상과 범위, 의무화, 기업지배구조, 입증책임 전환, 민사책임 인정 등에 대해 큰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적용 대상기업과 관련해 업계는 직·간접이 아닌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기업에만 실사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보다 완화된 규제를 적용하고 기업 지원방안도 같이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의회가 온실가스 감축, 기후협정 등 ‘기후변화’를 실사의 환경 항목에 포함한 것에 대해 업계는 책임소재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후변화는 실사범위에서 제외하거나 특정 일부 기업에만 적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기업 의사결정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의회가 기업지배구조 관련 규정을 실사 법안에 포함시킨 것과 관련돼 업계는 기업의 의사결정 지연 및 기업 활동 위축, 투자 감소 등을 이유로 들며, 공급망 실사 규정과 기업지배구조를 별도로 다루자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위반 시 각 회원국 재량에 따라 허용되는 민사 책임부과와 관련하여 업계는 기업정신과 경쟁력 저하, 소송 남발의 우려로 반대하고 있으며, 입증책임에 대해서는 입증책임 전환을 법안에 포함시키는 것보다는 공급망에 전반에 걸친 관리 프로세스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회원국별 입법과정이 

필요한 지침 형태로 마련될 전망

 

EU의 공급망 실사 법안은 전 회원국에 전면 적용되는 규정(Regulation)이 아닌 EU 차원의 전체적 목표 달성 방안에 대해 회원국별 입법과정이 필요한 지침(Directive) 형태로 마련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집행위는 12월 법안 발표 후 유럽의회·이사회의 표결을 거쳐 2024년 중 시행한다는 계획이나 당초 6월로 예상되었던 법안 발표시기가 현재까지 두 차례나 미뤄진 것으로 볼 때, 더 이상의 지연 없이 현재의 예상대로 추진될 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프랑스의 지속가능 평가기관인 EcoVadis는 프랑스가 자국의 공급망 실사법을 마련했을 당시 국내 업계의 극심한 반대로 법안 채택까지 4년이나 걸렸던 만큼, 전 EU-27국을 아우르는 법안 도출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역내 공급망 실사 법안 담당 부처가 변경되면서 법안내용이 당초 유럽의회의 요구 대비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집행위 사법총국(DG Justice)에서 단독으로 진행해오던 법안 작업이 2021년 6월부로 역내시장 총국(DG Grow)과 공동 진행으로 변경되었는데, 이 성장총국을 총괄하는 티에리 브르통(Thierry Breton) 집행위원의 친기업적인 성향으로 업계 입장이 상당부분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다.

참고로 브르통 위원은 프랑스 Groupe Bull, Thomson-RCA, France Telecom의 CEO를 역임한 기업가 출신이다.

 

KOTRA 벨기에 브뤼셀무역관 측은 “집행위의 법안 발표 시기가 다소 지연될 지라도 발표 시기만 다를 뿐 EU가 공급망 실사를 시행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역외국 기업에도 공통 적용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우리 관련 기업들은 지금부터라도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통합적 관리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개도국에 진출해 EU로 수출 중인 기업을 비롯해 개도국에 소재한 부품·협력업체의 환경 및 인권 상황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면서 “만일 추후 발표될 EU의 공급망 실사 법안에 역외국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적용받지 않더라도, 유럽 바이어들로부터 동등한 수준의 실사 이행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법안 내용을 면밀히 살피고 EU의 실사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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