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섬유산업연합회(이하 ‘섬산련’) 회장의 추대 명분이 퇴색됐다. 선거 또는 선출 방식이 업계 갈등을 부추기고 과열시킬 수 있다는 추대 명분을 내세웠지만 급기야 대구와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연판장을 돌리는 등 거센 반발에 직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구·부산 지역 단체와 업계의 반발로 6월 21일 추대위원회 회의에서 예정됐던 추대 계획이 무산됐다. 섬산련 회장 후보를 결정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5인 추대위원회가 과연 업계의 의견을 경청하고는 있는 건지 또는 대표성을 띄고 있는지 신뢰성과 공정성에 금이 갔다.
면방, 직물, 패션 스트림을 대표하는 단체장이 포함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간의 전례를 살펴볼 때 사실상 섬산련 전·현직 회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만약 선출 방식이었다면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전·현직 회장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공정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현 추대위원회에는 전·현직 회장을 포함시키고 있으니 이를 견제할 장치는 처음부터 없었다.
이러한 추대위의 무소불위 영향력을 의식해서 인지 차기 섬산련 회장 추대위원회 구성에 앞서 등장하는 그간의 후보군들은 하나같이 “추대위에서 추대를 해준다면 한 번 해보겠다”라는 막연한 입장을 내놓았다.
섬유산업계의 이번 반발은 섬산련 회장직에 뜻을 보이는 후보자들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추대위원회가 단일 후보를 추대해 총회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섬산련 회장직이 업계와 산업을 위한 봉사자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자신의 공명을 위한 자리로 퇴색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세간에는 ‘제3의 인물설(說)’까지 등장했다. 소위 ‘서울대 출신 CEO가 아마도 회장 후보로 추대될 것’이라는 추측이 떠돌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출마하겠다는 후보자들을 배제하고 추대위가 추대하는 인물은 늘 의외의 인물이었으니 막연한 억측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결국 이번 업계의 반발 역시 그간 쌓이고 묵혀있던 불만들이 이번 추대과정에서 분출된 셈이다. 취재진과 만난 단체장 역시 “언제까지 추대 방식을 고집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공명정대하게 입후보 등록을 받고 후보별 공약과 비전을 들어보고 역량을 그대로 투표를 통해 확인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재연임 역시 본인 의사를 묻기보다는 후보시절 제안했던 공약을 얼마만큼 이행했는지, 협회를 잘 운영해왔는지를 검증하는 등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타 단체 중 추대 방식으로 수장을 선임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업계의 분열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단일 후보를 내세운다. 이사회 또는 총회에서 합의가 잘 돼 후보가 단일화 될 경우라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단일화가 어려울 경우는 투표라는 차선책을 통해 수장을 선출한다. 우리는 어떤가?
섬산련 회장 선임 과정을 정의하자면 3무(無)로 압축할 수 있다. 공약, 공식 후보, 흥행이 없다. 첫째, 깜깜이 추대 방식이다 보니 정작 섬유업계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후보자의 비전과 공약이 없다. 어차피 추대위원회가 추대하고 총회에서 승인만 받으면 된다.
둘째, 후보가 없다. 사실 그간 후보로 인물들이 거론됐지만 몇 몇을 제외하곤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진 않았다. 이유는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한 뒤 추대를 받지 못하거나 또는 의외의 인물이 등장할 경우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 두려워서다. 언론과 업계에서 거론되는 후보들을 놓고 온갖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셋째, 흥행성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무관심이다. 섬산련 산하 단체나 회원사를 제외하곤 업계에겐 관심 밖이다. 코로나와 경기 침체 여파로 당장 ‘내 코가 석자’라 내 회사 일 외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다. 정상적이라면 후보자들의 면면을 평가하고, 그 평가 결과와 의견을 자신의 표로 표현한다. 하지만 깜깜이 추대 방식에선 이러한 자신의 의사표현과 권리가 없다.
만약 추대 방식을 고집하겠다면 5인 추대위원회 구성부터 전·현직 회장을 배제해 신뢰성을 높이든지 또는 이사회 현장에서 후보 추천을 받고 무기명 투표를 통해 이사와 회원사들이 직접 회장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지도록 무관심을 넘어 수수방관해온 섬산련 대의원, 이사진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뒤에서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개진하는 적극성이 한국섬유산업의 미래를 희망차게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성준 취재부장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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