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최대 스포츠 축제 2024 파리 하계 올림픽이 7월 26일(현지시간) 막을 올렸다. 7월 27일부터 8월 11일까지 17일간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는 206개국 1만5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32개 종목에서 329개의 금메달을 놓고 열띤 메달 경쟁을 펼친다. 우리의 경우 22개 종목에서 144명의 선수가 출전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올림픽 열기를 스포츠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섬유패션산업 관련해서도 올림픽 버금가는 글로벌 행사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4년마다 열려 섬유기계 분야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 섬유기계 전시회 ITMA가 있다. 지난해 6월 8일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7일간 개최된 ITMA 2023에는 48개국 1700여 기업이 참가한 가운데 약 10만여 명의 방문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현장은 새롭게 개발한 기술과 장비를 보기 위해 많은 인원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올림픽처럼 메달이나 순위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각 나라를 대표해 참석했기에 자긍심만큼은 올림픽에 뒤쳐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프리미엄 패션소재 전시회 프레미에르 비죵 파리도 전 세계에서 엄선된 최고의 소재기업들이 자웅을 가리기 위해 매년 2회 한 자리에 모여 올림픽 못지않은 열기를 느낄 수 있다.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지난 7월 전시회에는 48개국 930개 업체 참가해 전시장을 찾은 120개국 8만6천여 명을 대상으로 열띤 경쟁을 펼쳤다.
올림픽에 나가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많은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전시회에 나가면서 새로운 소재 개발이나 신규 바이어 발굴과 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모방 기술이나 요행만으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이제는 어려워졌다.
지난 7월 28일(현지시간) 한국 올림픽 여자 양궁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전무후무한 10연패 달성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신화가 써지는 역사적 순간을 가슴 졸이며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너무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다.
양궁 단체전은 세 사람이 함께 한 팀을 이루는 경기이기 때문에 한 사람만 잘해선 승리할 수 없다. 섬유패션산업도 마찬가지다. 개인 기업의 역량이 아무리 훌륭해도 함께 할 때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섬유패션산업은 ▲화학섬유·방적사(업스트림) ▲직물·염색가공(미들스트림) ▲의류·패션(다운스트림)으로 구성되어 원사의 원료부터 원사, 직물, 염색가공 및 봉제, 의류, 유통까지 많은 기업들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그래서 다른 산업보다 협력이 더 중요하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회장 최병오, 이하 섬산련)의 주최로 지난 7월 10일부터 2박 3일간 부산에서 열린 섬유패션업계 CEO 포럼을 찾은 참석자들도 행사 기간 내내 하나 같이 스트림간의 협력의 중요성과 상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상운 섬산련 명예회장(효성 부회장)은 “해외에 나가서 보면 일본이나 대만은 산업계가 굉장히 친하고 서로 도와주는데 우리는 섬유패션업계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것 같다”며 “화살도 여러 개가 모이면 꺾기가 힘들 듯 여러 형제가 협력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절전지훈(折箭之訓)’을 교훈삼아 섬유패션업계가 합심해서 힘을 모으면 지금의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각자도생은 중국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아니다. 조선시대 때 대기근이나 전쟁 등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말로 조선왕조실록 선조 27년에 임진왜란(선조 25년~32년) 초기 김해·부산 등지를 모두 왜군들에게 내어주고 그 지역 백성들에게 조정이 내린 교지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평양의 싸움에서 패한 뒤에 왜적은 분한 김에 도성의 백성을 다 죽이고서 물러갔는데 이제 또한 이런 일이 필시 있을 것이니, 동래, 부산, 김해, 울진의 백성들도 장차 살육의 환난에 걸릴 것이다. 그러니 미리 알려 주어 각자 살길을 도모(각자도생)할 것을 몰래 전파하라.”
조선왕조실록에는 임진왜란 외에도 정묘호란 같은 큰 전란과 조선 중후기 대흉년 같은 국운이 위기에 달했을 때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오늘날 우리 섬유패션산업에 만연한 각자도생도 결국 우리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취재차 해외 전시회에서 만난 국내 소재기업 대표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20년 가까이 전시회에 계속 참가해왔는데 과거에는 한국 기업들이 알아서 잘 뭉치고 했는데 근래에는 그런 부분들이 없어진 것 같아 한편으로 아쉽다”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해외 전시회에서 보면 다른 나라의 참가업체들은 하나의 가족이나 팀처럼 서로 잘 뭉치고 화기애애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그런 친화력이 부러울 때도 있다.
방주득 한국섬유수출입협회 회장(덕산엔터프라이즈 회장)은 일본이 자랑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와 세계적 섬유화학기업 도레이의 협업을 예로 들며 “우리 섬유산업이 가장 큰 위기에 빠져있는 반면 일본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성장산업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스트림 간의 협업과 소재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히 일깨워 주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도 유니클로 같은 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합치고 함께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매체인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장 자산이 많은 기업은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 리테일링 창업자로 세계 34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3년 유니클로와 도레이가 공동 개발해 지난해 출시 20주년을 맞은 흡습발열 기능성 의류 히트텍의 글로벌 판매 누적량은 15억장을 돌파했다. 또 유니클로가 도레이와 협업한 히트텍(겨울용)과 에어리즘(여름용) 두 가지 아이템은 차별화 소재로 유니클로의 전 세계 매출 50%를 견인하고 있다.
이상운 섬산련 명예회장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해외 제조 설비를 이용해서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 무대로 나가면 세계에서 주름잡고 있는 브랜드들을 이길 수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강점인 IT를 기반으로 해서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사업을 전개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산업계와 학계, 연구기관, 정부가 힘을 합쳐서 빠른 시간 내에 대응한다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기일수록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강한 장수 밑에는 약한 군사(군대)가 없다는 말이 있다. 유능한 장수는 군사를 잘 쓸 줄 알기 때문에 그 밑에 무능한 군사나 군대가 없다는 뜻으로, 지도력의 중요성과 의의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새로운 기술 개발이나 시장 확장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는데 급급한 기업의 대표 밑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원하는 직원들이 계속 남아서 충성을 다할 리가 없다.
최병오 회장(패션그룹형지 회장)이 섬산련 회장으로 취임한 지 곧 1년이 되어 간다. 2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참가자 갱신과 함께 성공적인 행사라고 평가를 받은 이번 CEO포럼에서는 섬유패션산업을 위해 여의도(국회)에 가서 살고, 발전 방향을 담은 백서를 만들겠다고 섬유패션인들 앞에서 공언했다.
이번 포럼 기간 최병오 회장을 보면서 느낀 점은 섬유패션산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섬유패션산업의 부흥이라는 주어진 소임에 대해 최선을 다 하겠다는 진심이었다. 진심이 통한 걸까? 섬유패션인들 모두 마치 마음속으로는 화합을 원하고 있었다는 듯이 섬유패션업계의 선봉장에게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실어주고 함께 동참하겠다는 분위기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엿볼 수 있었다.
자존심이 강할 만큼 자수성가하며 섬유패션업계의 최고 수장이 되었지만 최병오 회장은 스스로 먼저 벽을 허물었다. 그래서 융합을 위한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CEO포럼에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회장이 강연자로 나서게 된 배경도 최병오 회장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친화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섬산련 이사로 총회에 계속 참가해왔던 한 CEO는 “그동안 섬유패션산업 내 협회 단체들은 서로 자기 어려운 얘기만하며 기세우기 바빴다”며 “어떻게 하면 협조하고 단합해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있을까 깊이 있게 아무도 안 들어줬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김웅기 회장이 강연에서 인재양성을 위한 신조로 강조한 ‘경청(傾聽)’을 최병오 회장은 그 누구보다 잘 실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마도로스를 꿈꿨던 최병오 회장이 이제는 ‘대한민국 섬유패션산업호’의 선장으로서 중요한 키를 잡게 됐다. 풍파가 몰아치는 바다에서는 배가 가야할 방향을 정하는 키를 잡은 선장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키를 바로 잡고 안 잡고에 따라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배가 난파될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섬유패션산업이라는 한 배를 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키를 잡은 최병오 회장을 믿고 각 스트림과 협회, 단체들이 맡은 바 위치에서 각자의 노를 잡고 소임을 다한다면 함께 풍파를 헤쳐 나가고 대한민국 섬유패션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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