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국동포(조선족) 기업 네트워크와 한국경제

김윤태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한중미래연구소 소장/인문대학 학장

TIN뉴스 | 기사입력 2024/09/02 [07:50]

▲ 김윤태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한중미래연구소 소장/인문대학 학장  © TIN뉴스

얼마 전 경기도 화성의 이차전지 공장 화재로 아까운 인명이 여럿 희생됐다. 이 중 대다수가 중국 동포다. 희생자가 한국인이든 중국 동포든 어느 외국인이든 매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애도와 사후 대책, 원인분석과 재발방지에 보도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불편하게도 ‘편 가르기’가 재연됐다. 

 

중국 정부 측에서는 조선족이 한국에서 일하면서 한국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왔으나 정작 임금과 복리후생 측면에서는 내국인에 비해 열악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선족’이 중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일부 여론도 편 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중국동포라니 무슨 헛소리냐, 중국인이다.”에서부터 “중국인이 불을 지른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까지 법적제재가 필요한 수준의 혐오 표현이 온라인에 확산되기도 했다. 누리꾼의 몰상식과는 달리 ‘중국 동포’ ‘한국계 중국인’ 등은 ‘조선족’을 대신해 사용되는 공식 표현이다. 국립국어원은 2010년 ‘조선족’을 차별적 표현으로 보고 ‘중국 동포’를 바람직한 표현으로 제시한 바 있다. 

 

호칭부터가 차별적이고 배타적

 

앞에서 언급한 몰상식한 누리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 국적을 소지한 우리의 동포를 ‘조선족’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조선족’이라는 호칭은 중국 정부가 그들을 중화민족의 일원, 즉 그들의 소수민족으로 획정하면서 부여한 명칭이다.

 

우리가 우리의 동포를 지칭하면서 중국 정부가 부여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를 재미동포, 재일동포라고 부른다. 그러나 유독 중국 국적 동포에게만 ‘조선족’이라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재중동포 혹은 중국동포가 바람직한 호칭이다. 

 

이름이 실제에 부합해야 그에 걸맞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지속적으로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며 갈라치기 한다면, 그들의 ‘한민족 정체성’은 점차 ‘중화민족 정체성’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조선족을 한민족이 아닌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강조하며 교육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우려된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그들을 ‘중국 동포’로 부르며 그에 합당한 지위를 부여하면, 한민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한민족 정체성’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고, 한민족의 자산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자 할 것이 분명하다. 이름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갈수록 많은 중국 동포 기업이 거주국(중국)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동시에 모국(한국)과도 각종 연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유한 생활공간의 구축과 활동을 우리는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적 생활공간 구축’이라 한다.

 

이들의 초국가주의적 활동은 모국의 발전과 더불어, 거주지의 한민족 커뮤니티 발전에 더욱 많은 기회와 자원을 가져다준다. 한국에 투자하거나 한국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한국 기업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도와줄 수 있으며, 중국 현지의 한인 커뮤니티를 더욱 발전시켜, 장차 한인의 경제 사회적 지위를 한껏 향상시킬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사람들이 바로 중국 동포다. 

 

▲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수상  © TIN뉴스

 

배출(排出)에서 인재 배출(輩出)로

 

중국동포는 배출(排出) 당한 안타까운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수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배출(輩出)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동포이기도 하다. 배출이란 인재를 길러 사회로 내 보낸다는 의미로, 이를 한자로 표현하면 ‘배출(輩出)’이 된다. 하지만 또 다른 ‘배출(排出)’도 있다. ‘인재를 배출한다’는 뜻과는 아주 상반되게, ‘안에서 밖으로 밀어낸다’는 뜻이다. 한글의 음은 같지만 한자의 뜻은 완전히 다르다.

 

공교롭게도 중국동포에게는 이 두 가지 단어가 함께 적용될 수 있다. 조선 말기 탐관의 혹정과 가난에 시달리다 생존을 위해 만주로 떠나야 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조선을 떠나 만주로 향했다. 심지어는 일제의 강압으로 강제이민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것이 중국동포의 이주 역사다.

 

조국을 배신하고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해외로 배출(排出) 당한 것이다.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국가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엄연한 빚이다. 중국 동포를 또 다시 밀어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 하물며 오늘날의 중국 동포 집단은 인재의 풀이며, 민족 자산의 보고(寶庫)다. 많은 인재가 배출되고 있으며 한민족 자산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중국 동포를 끌어안고 한민족 공동체를 한 걸음 더 발전시켜야 할 때이다. 

 

세계 곳곳에서 화려한 성공 역사를 써내고 있는 화교 역시 이렇게 자국에서 해외로 방출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방출되었던 화교들이 중국이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힘을 보탰다. 화교들은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재력을 모았고,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세력을 형성했다.

 

이 견고하게 뭉쳐진 화교 네트워크가 가난했던 중국을 도와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끌어 냈다. 중국의 개혁 개방 초기 중국 내 외국인 직접 투자액 가운데 70% 가량이 홍콩, 대만을 포함한 화교의 자본이었다. 개방 초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화교자본의 모국투자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직도 중국에 직접 투자한 외국자본의 절반은 화교자본이 차지할 정도다. 

 

훌륭한 인재의 ‘배출(輩出)’ 또한 화교의 자랑거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부를 포함해 정치인, 지식인 등 성공한 화교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베트남 지도자 호치민(胡志明),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수상 등 동남아의 굵직한 정치인을 배출해냈다. 동남아시아 산업의 50~80%와 대외무역의 40%정도를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적 소프트웨어 회사인 CA와 인터넷 서비스 회사 Yahoo도 화교가 일궈낸 세계적 기업이다. 포브스 잡지는 아시아 10대 증권시장의 1천 개 기업 중 51.7%가 화교가 주인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낸 적도 있다. 이쯤 되면 그 옛날 ‘배출(排出)’이란 단어로 상징되었던 화교에게 이제는 ‘배출(輩出)’이란 단어가 훨씬 어울리는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동포들도 이와 못지않은 성공역사를 쓰고 있다. 중국동포는 다른 중국인보다 학구열이 높은 민족으로 정평이 나있다. 중국동포 중 석·박사 학위자의 비중은 중국 전체 평균의 2배를 상회한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는 자치주 전체 인구의 34%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변자치주 대의원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주정부 관리 중 56%가 중국동포다. 

정치적 회의가 조선어로 진행되고 중국어로 번역된다. 조선어 텔레비전·라디오 방송국도 있다. 중국 최고 정책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상무위원을 비롯하여, 중국의 실질적 통치 집단인 중앙위원, 중앙후보위원 중에도 중국동포가 다수 이름을 올렸다.

 

중국동포는 중국 의학과 과학발전사에도 굵직한 한 획을 그어왔다. 중국 종양의학의 대부, 중국 우주공간 광학계의 일인자, 통계역학 ‘군자론(群子论)’의 창시자, 중국 로봇축구의 태두로 불리는 사람도 중국동포다. 중국의 두 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6호 발사 성공에도 중국동포 과학자들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비단 과학계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건축계, 기계공업, 의학, 동물배태연구, 산림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다른 성과를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 역시 기대할만한 인재풀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의 일류대학 재학 중이거나 한국이나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 유학하고 있는 중국동포 자녀들도 주류민족인 한족(漢族)에 비해 월등히 많은 비중을 자랑한다. 특히 일본에는 대학원에 유학한 다수의 엘리트들이 일본 주류학계에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배출 당한 암울했던 역사를 딛고 일어나 이제는 명실상부한 인재의 풀로서 민족자산의 보고로서 우리 민족의 부활에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집단이 바로 중국동포다.

 

▲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 60주년 기념식     ©TIN뉴스

 

중국동포 기업과 모국 경제

  

중국 동포 기업은 한중 수교를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과의 연계, 글로벌 세계로의 진출에서 중국의 어느 민족보다도 빠르고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한인기업과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민족자산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모국인 한국경제 발전에, 나아가 한민족 공동체의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이다.

 

중국의 광둥(廣東)과 푸젠(福建)은 중국을 일으켜 세운 최대 공로자다. 광둥과 푸젠 출신 화교가 없었다면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또한 화교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화교를 모국으로 끌어들이는데 갖은 노력을 다했다. 투자유치는 물론이거니와 천인계획(千人計劃)을 통해 해외의 화교석학, 과학자들을 국내로 초빙했다. 화교를 모국과 연결시키고 그 역할을 중시한 좋은 예이다. 중국정부의 화교에 대한 대우와 화교들의 활약은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사실 화교의 규모가 4천만을 넘어서니 그 절대규모가 대단하다 하겠지만 14억 중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3%에 그친다. 그러나 750만 우리 해외동포는 7500만 남북한 총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750만 해외동포 중 중국동포의 수는 180만 명을 상회한다. 해외 동포의 4분의 1이 중국동포인 셈이다. 중국 동포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 중국 동포의 가교역할이 절실하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더더욱 중국 동포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 최근 북한이 중국과 해외의 한인 동포 기업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투자 유치전에 나선 것을 결코 가벼이 봐선 안 될 것이다.

 

중국 동포 기업은 한중 수교를 기점으로 태동과 성장을 거듭했다. 옌볜(延邊)을 비롯한 동북 3성 집거지역 기업의 비약적 발전은 물론이고, 베이징(北京), 칭다오(靑島), 상하이(上海) 등 중국의 연해 대도시에 새롭게 이주 정착한 기업들도 속속 성공역사를 써내고 있다.

 

1991년 중국 동북3성 전체에서 중국동포가 설립 운영한 기업은 354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약 20년 후인 2012년 기준 ‘중국 조선족 기업가협회’에 등록된 기업이 3,600개를 상회했으며, 헤이룽장(黑龍江) 조선어 신문사의 자체조사에 의하면 1만7천5백여 개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중국 조선족 기업가 협회’는 2007년 출범됐으며, 2016년 기준으로 중국의 16개 도시에 각 지역 협회가 결성됐다. 각 지역 조선족 기업가 협회에 등록된 수는 이미 해당 지역 ‘한국인 기업협회(中國 韓國商會)’의 회원 수를 능가한다. 2023년 베이징  한국중소기업협회에는 130여개 회원사가 등록되어 있는 반면, 조선족기업가협회에는 180여개 중국동포 기업이 등록되어 활동하고 있다. 

 

수출입을 통한 중국동포 기업의 한국과의 연계가 활발하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중국 동포 기업의 주요 수출대상국은 한국(51%), 일본(20%), 미국(10%)으로 한국이 단연 수위를 차지한다. 수입 역시 전체 수입액의 80%가량을 한국에 의존한다.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중국동포기업은 아직 그 수가 많지 않다. 하지만 중국진출 한국기업에는 적지 않게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업 간 네트워크 구축 역시 한국기업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중국동포 기업 간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 중국투자 한국기업, 그리고 한국에 있는 기업과도 튼튼한 연대를 맺고 있다. 또한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코트라(한국무역협회)를 통해서 한국기업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한인기업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한민족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음이다. 월드옥타에서 중국동포의 활동은 매우 특이할 정도로 활발하다. 중국지역 월드옥타의 회원은 이제 한국인보다 중국동포의 수가 더욱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더욱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2016년 발족한 가리봉동 우마길조선족(중국동포)상우회  © TIN뉴스

 

협력과 상생을 통한 한민족 자산의 재구성

 

한국기업 특히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기업과 중국동포 기업 사이의 협력과 상생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다. 중국동포 기업은 현지 시장 정보와 문화 및 현지 네트워크에서 우월한 위치를 갖고 있고, 중국진출 한국기업은 자본, 기술 및 경영기법에서 앞서 있다.

 

상호 협력을 통해 상생의 길을 만든다면, 경쟁이 치열해 진 중국 시장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생모델은 이미 적지 않은 기업들에 의해 완성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화교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성공역사를 써낸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기업들도 중국동포와 함께 중국시장에서 화교를 능가하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대북 경협의 중재자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북한도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체제의 대립으로 한국기업은 북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대북 투자 경험이 많은 중국 동포 기업(특히 중국 조선족 기업가 협회)의 정보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중국 동포는 국제이민의 형태 중에서 매우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다. 중국의 국민이라는 ‘국가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민족정체성’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모국이라는 개념 또한 애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한민족 정체성’이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야만 한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중국동포 기업은 한국기업의 중국시장 진출과 글로벌화, 대북 경협에 매우 중요한 매개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작금 국내외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중국 동포 기업의 중국 내 위상 역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성공한 중국 동포 기업들은 향후 한중 양국의 상생 경제의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들의 역동성을 중시하고 실질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하여 한민족 공동체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때이다.

 

[약력]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국립대만대학교 사회학 석사,박사

(전) 중국학연구회 회장

(전) 외교부 재외동포정책 실무위원

(현)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한중미래연구소 소장/인문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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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유인 2024/09/02 [08:32] 수정 | 삭제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중국동포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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