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만 평 이상 공장 내부에는 편직기 450여대와 디지털 프린트(DTP)가 풀(Full)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중 백미는 20~60수까지 원사 굵기별로 각각의 라인에서 편직부터 프린트까지 일괄 생산되고 있었다. 만약 기계가 고장이 나면 바로 떼어내고 창고에 비축된 새 기계로 교체해 다시 돌린다.
더욱 놀라운 점은 주문 생산이 아니라 일단 생산해 놓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바로 출고하는 ‘선(先)생산 후(後)주문’ 방식이다. 일부 국내 경편업체 중 이 같은 생산판매 방식을 취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 이 공장은 생산해놓고 팔리지 않으면 덤핑가격으로 시장에 내다판다. 이는 최신 생산설비로 붕어빵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원단 및 프린트물은 우리에겐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가격 경쟁력의 단면이다.
직접 눈으로 현장을 둘러봤다는 업체 관계자는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우리나라 공장이 크다고 해봐야 몇 만평인데 수십 배에 달하는 중국 공장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를 보며, 놀라웠다”면서 “과연 우리나라 공장에서도 이 정도의 설비 투자를 할 수 있는 곳이 몇 곳이나 있을까. 이런 중국 공장들과 가격 경쟁을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산 소재는 이미 중국과 대만이 따라잡혔고, 일부 아이템은 추월당한지 오래다. 결국 다양한 아이템 생산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설비 투자만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흔히 한국산 소재는 우수한 품질과 차별화된 아이템이 강점으로 꼽힌다. 그에 반해 아이템 수가 적고 가격이 비싸다. 반면 중국산은 품질은 떨어지나 아이템 수가 많고 가격이 저렴하다.
지금의 부진한 국내 섬유산업 현황을 단순히 가격 경쟁력 탓으로 돌리기에는 아쉬운 점들이 많다.자동화 또는 무인화 공정을 통해 인건비를 상쇄시켜 제조 코스트를 낮추고 동시에 품질을 높이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안겨진 과제다. 업체 관계자들도 한 목소리로 설비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영신물산 조창섭 회장은 “섬유염색업계가 살아남길 길은 자동화”라고 강조한다. 조 회장은 자동화 공정을 갖춘 해외 공장의 사례를 열거하며, 자동화(무인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섬유산업이 100% 자동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해외에는 이미 편직부터 염색까지 인력 없이 자동화 공정이 이루어지는 곳들이 많다”며 “우리는 여전히 인력 부족과 인건비, 각종 제조 코스트 상승과 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LA 자바시장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2020년까지만 해도 LA에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염색공장이 29개였지만 지금은 3개만 남았다.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는 인건비 때문이다. 미국 자바시장의 시급은 15달러, 반면 타 지역은 10달러다. 자동화 등 설비 투자를 멀리하고 인력 의존도만 높이다 결국 사향 길로 접어든 것.
조 회장은 “해외든 국내든 현재로선 이 사업을 유지하느냐,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점이다. 결국은 경쟁력이다. 유럽의 경우 이미 모든 제조공장들이 무인화가 됐다. 편직, 봉제도 자동화되고 염색공장도 무인화가 가능해졌다”며 “문제는 우리나라 공장들이 자동화를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결국 사람을 안 쓰는 방법을 찾으면서 설비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자금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다. 조 회장은 “자동화나 무인화를 도입하기에는 국내 공장들은 30~40년 이상 구식 공장에 설비도 노후화되어 있다. 비용도 문제지만 자동화 도입이 가능한 구조의 건물이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려우니 투자도 어렵다”면서 “그럼에도 이러한 자동화 설비에 대한 투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지금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투자가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우 공동 투자 및 운영 방식을 제안했다. 조 회장은 “예를 들어 4명이 25% 부담해 자본을 모아 법인을 설립하고 공장을 운영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현재 섬유염색, 편직 등 국내 상황 상 기업 단독으로 이러한 설비를 투자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공동 투자도 재고해볼만하다”고 조언했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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