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 증시가 요동치며, 글로벌 무역 질서가 혼란에 빠져 들었다. 한국 등 미국과의 FTA 체결국에도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자 급기야 ‘FTA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
그럼에도 당장 급한 불은 끈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발효 시점인 4월 9일 이후 중국을 뺀 나머지 국가에 90일 동안 상호관세를 유예하고 기본관세 10%만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상호관세 기본 세율인 10%가 국가별 상호관세 ‘하한선 수준’이라도 덧붙였다. 이는 이번 76개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의 최종 목표는 중국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리면서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 간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지는 꼴이 됐다.
더구나 이러한 발표가 나오기까지 ‘진짜다’, ‘가짜뉴스다’ 등등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한 발언과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혼란을 더욱 키웠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 또 람 공산당 서기장과의 통화 내용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하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었다”는 글을 올린 이후 트럼프의 무역 책사인 피터 나바로 무역고문은 베트남의 비관세 행위를 지적하며, “상호관세 철회는 없을 것”이라며 직격한 것 역시 혼란을 키우고 있다.
어찌됐건 앞으로 90여일 상호관세 폭탄을 안아든 76개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킬만한 협상 대안 찾기에 혈안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한국 등 5개 우방국들과 무역 합의를 먼지 진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르면 내주 고위급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내 의류벤더, 원단 밀, 패션업체 등의 대표적 해외생산거점인 베트남의 경우 당초 상호관세는 46%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대로 10% 기본 관세로 합의된다하더라도 베트남이 대미 수출 시 의류제품에 대한 관세는 15% 이내다. 여기에 10% 기본 관세를 추가하면 약 25% 내외. 인건비 상승, 에너지 비용, 원자재 비용 등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는 생산비용으로 마진은 줄고 급기야 10% 추가 관세는 큰 부담이다. 수요와 공급기업 모두에게 악재다.
이러한 가운데 취재 차 방문한 4월 9일과 10일 양일간 취재 차 방문한 베트남 호치민 SECC에서 열린 ‘사이공텍스 2025’ 전시장의 최고 이슈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였다. 특히 베트남 현지 공장을 운영 중인 국내 섬유패션기업 관계자들은 향후 상호관세에 대해 높은 관심과 우려를 나타냈다.
베트남 호치민에 현지 봉제공장을 운영 중인 75년 업력의 남성복 정장 전문 업체 A사 관계자는 “이미 의류에는 7.5% 관세가 있었는데 이번 추가로 상호관세가 부과됨에 따라 더 이상 중국에서는 옷을 만들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미주 고객사가 80%인 A사의 경우 상호관세 부과로 인해 향후 미국 시장에서 유럽 시장으로 확대를 검토 중이다. 현재 미주 수출과 내수가 각각 80:20으로 과거에는 유럽이 5%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 운영 중인 베트남 등 해외생산 거점에도 46% 상호관세가 부과됨에 따라 이번 전시회 방문 목적 역시 유럽 바이어들이 대거 방문한다는 소식에 뒤늦게 참가한 케이스다.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를 기회로 유럽 시장 수출을 좀 늘려보려고 한다. 특히 남성 정장 위주로 하다 시장 확장의 제한으로 여성복도 취급하고 있다. 유럽은 아직 시작 단계이긴 한데 고급 브랜드를 위주로 여성복을 수출하고 있다”면서 “특히 품질과 브랜드 아이덴티티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정장의 경우 니트나 티셔츠와 달리 바이어들이 쉽게 업체나 브랜드를 바꾸기가 어렵다. 관세 이슈가 있더라도 정장만큼은 조금 더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국내 화섬 메이커 B사의 현지 법인 관계자는 “전시회 오신 분들이 대부분 관세 이야기다. 일단 상황을 기다려보자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특히 JC Penney 등 미국 바이어들의 FOB 인하 요구도 화제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의류 OEM 등 제조사 평균 마진율이 5~15%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FOB 5~10% 인하 시 이익 대부분이 잠식되고, 관세 20% 부담 시 실질적인 적자 전환 가능성이 클 것”으로 우려했다.
B사 관계자는 “베트남의 경우 DDP가 많고, 인도, 방글라데시는 FOB가 많아서 이런 요구들이 나온 것 같다. 근본적으로 앞으로 관세를 얼마만큼 낮추어 줄 수 있느냐 인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관세를 아예 철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향후 관세를 낮추어 준다 해도 당분간 미국 물가 인상으로 인해 소비력이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옷을 구매하지 않게 되고 그만큼 수요가 줄고 오더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큰 타격”이라고 우려했다.
코로나 종식 이후 회복세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에 미국발 상호관세 부과는 올해 수출 경기 위축을 예고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코로나 상황을 회상하며, “코로나가 끝나고 2022년, 2023년 원단 밀, 봉제공장들이 거의 죽다시피 했었다. ‘이런 불황이 없다.”, “망했다” 등 이런 이야기가 나오다 2024년 들어 업체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희 회사만 해도 15~20% 정도 매출이 점프하면서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상호관세로 인해 다시 2023년 수준으로 되돌아가거나 더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올해 1분기는 그럭저럭 넘어갔다고는 해도 앞으로가 문제다. 예를 들어 2~3분기까지 50% 정도 매출이 준다고 하면 2023년도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B사의 경우 앞으로 당장 4월에는 기존 오더를 수행하는 동시에 가동률을 줄여나가면서 판매가 예상되는 기본 아이템 재고를 축적해 놓았다 5월에 수출 경기가 좋지 않으면 유럽, 미주, 아시아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체 생산 대신 수입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다. B사 관계자는 “앞으로 미국의 조치를 예의주시하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현재 섬유패션업계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개점휴업”이라고 말했다.
방적업체 C사 관계자 역시 “관세가 올라간다고 하니 당장 가격부터 깎아달라고 요구한다. 일단 팔아야 하고 별 다른 대안이 없으니 현재로선 이러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美 바이어, “관세부담 나누자”
한편 상호관세 발표 직전부터 미주 바이어들은 관세 부담을 나누자며, 협력업체들에게 주문 중단, FOB 인하 등의 요구가 시작됐다. 갭(GAP Inc.)의 경우 4월 초 홍콩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관세 부담을 나누자고 요청했다. J.C.Penney도 FOB를 5% 이상 할인해줄 것을 요청하며, 주문 수량이 늘어날 경우 더 낮추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갭의 경우 2023년 기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의 의류 소싱 비중은 각각 약 29%, 18%. 이후 2024년 10월 기준, 베트남 21.3%, 인도 17.5%, 인도네시아 11.6%,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각각 7.6% 등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의 비중이 83%에 달했다. 반면 중남미 과테말라는 4.8%에 불과했다. 타겟의 경우 3월 기준 중국 상품이 30%를 차지했다. 이는 2017년 대비 60%에서 절반으로 줄어든 수치다.
나이키의 경우 2023년 회계연도 기준, 신발 전체 생산량의 50%를 베트남에서 생산했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각각 27%, 18%를 생산한다. 베트남의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의류 부문 역시 베트남에서 29%를 생산한다.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각각 18%, 16%를 생산한다.
동시에 밴더, 원단 밀 등 베트남 생산거점을 기반으로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관세 리스크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한세실업㈜(의류) 베트남 50%, 기타 동남아시아 25%, ㈜화승엔터프라이즈(신발)은 베트남 60%, 인도네시아 30%로 75~90% 정도 동남아시아 지역에 해외 생산 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이들 기업들의 미국 수출 비중은 각각 85%, 23%다.
그렇다고 과테말라 등 현재 운영 중인 지역보다 관세가 낮은 지역으로의 이전도 쉽지 않다. 기업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기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과 비교해 숙련도 차이, 정치적 리스크, 인프라 부족 등 현실적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관세, 관세 회복력 시험대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한 25% 상호관세 결정에 대해 일부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먼저 2024년 대미 섬유 수출액은 9억6,318만 달러로, 향후 관세 인상으로 한국 섬유시장 점유율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번 관세는 상당한 차질이 예상되나 미국 주도의 무역 재편으로 인한 광범위한 혼란 속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큰 관세 인상에 직면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25% 관세는 상대적으로 적정한 수준이며, 특히 기능성 섬유 및 기능성 직물과 같은 틈새시장에서 고품질 섬유 생산에 대한 명성은 미국 바이어들의 수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섬유 산업은 오랫동안 관세가 없는 혜택(한미 FTA)을 누리며, 미국과 강력한 무역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관세는 이러한 관계의 회복력을 시험할 것이며, 미국의 완제품 제조업체는 여전히 신뢰성, 혁신성, 프리미엄 품질로 인해 한국의 중간재를 선호할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섬유, 의료용 원단, 스마트 웨어러블과 같은 특수 응용 분야를 꼽았다.
무역 전쟁의 더 넓은 맥락에서 한국은 중국 공급망에 대한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 매김함으로써 관세와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노출을 줄이려는 미국 바이어들로부터 무역과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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