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패션산업에도 ‘미슐랭 가이드’가 있다면

TIN뉴스 편집국 김상현 취재팀장

TIN뉴스 | 기사입력 2026/01/28 [14:31]

▲ 섬유패션산업에도 ‘미슐랭 가이드’가 있다면  © TIN뉴스

 

2024년 선보인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흥행은 단순한 요리 서바이벌을 넘어, 동시대 한국 사회의 감수성을 정확히 건드린 결과다. 스타 셰프와 무명 요리사를 ‘계급’이라는 프레임으로 대비시킨 이 프로그램은 실력과 선택만으로 기존 위계를 전복할 수 있다는 서사를 통해 강한 몰입감을 만들어냈다.

 

특히 기술 그 자체보다 판단, 선택, 심리전이 강조된 연출은 요리를 하나의 사회 드라마이자 문화 콘텐츠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셰프 개인의 브랜드 가치가 재조명되고, 파인다이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파급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 흐름은 2025년 개봉한 일본 영화 ‘그랑 메종 파리’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품은 2019년 드라마 ‘그랑 메종 도쿄’를 영화화한 것으로, 레시피가 아닌 파인다이닝의 정신성, 집착, 긴장, 책임, 집단 창작이라는 철학을 정면으로 다룬 미식 영화다. 

 

 

영화는 기무라 타쿠야가 연기한 천재 셰프 오바나 나츠키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 아시아인 최초 미슐랭 3스타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에 도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에 실제 아시아인 최초 프랑스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Restaurant KEI’의 코바야시 케이 셰프가 요리 감수로 참여해 작품의 현실성과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미슐랭 심사위원 앞에서 선보이는 디너 코스다. 시소 그라니테로 시작해 스모크와 무스, 해산물과 육류, 그리고 된장을 활용한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이 코스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세계 각지의 맛과 철학을 집약한 하나의 서사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미슐랭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왜 미술관에서 거장의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과 닮았는지 이해하게 된다. 파인다이닝은 ‘맛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오감을 설계해 체험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미각은 물론, 플레이팅이 주는 시각적 감동, 바삭함과 크리미함이 교차하는 촉각, 덮개를 여는 순간 퍼지는 허브와 발효 향의 후각, 접시와 잔이 부딪히는 미세한 소리까지 시각·촉각·후각·청각은 미각을 증폭시키는 보이지 않는 플레이팅이다. 그래서 한 코스는 혀로 끝나지 않고, 몸 전체에 남는다.

 

이 지점에서 파인다이닝은 패션과 닮아 있다. 옷 역시 보는 순간보다, 입고 움직이고, 소리를 내고, 공기를 머금을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 파리 3스타 레스토랑 Plénitude - Cheval Blanc Paris <출처 미슐랭 가이드>  © TIN뉴스

 

특히, 프랑스 코스 요리는 아페리티프에서 시작해 디제스티프로 마무리되는데 이 순서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미각과 신체 반응, 경험 설계가 결합된 결과다. 가벼운 맛에서 진한 맛으로, 단순한 질감에서 복합적인 질감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혀의 피로를 최소화하고, 전체 식사를 하나의 서사로 완성한다. 

 

옷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잘 짜인 코스 요리와 닮아 있다. 각각의 단계는 독립적이지만, 순서가 흐트러지면 완성도 전체가 무너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식전주 아페리티프에 해당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문제의식과 시대 감각이다. 아직 형태는 없지만, 왜 지금 이 옷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정적 전조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컨셉 기획과 리서치는 한입 요리 아뮤즈 부슈다. 브랜드의 방향, 시즌 무드, 타깃을 제시하며 이후 전개될 모든 선택의 기준을 만든다.

 

소재 선택과 개발은 전채 요리 오르되브르와 앙트레에 가깝다. 원단의 촉감과 중량, 색감은 이후 패턴과 봉제의 가능성을 미리 규정한다.

 

패턴 설계와 샘플 제작은 메인 요리를 준비하는 단계다. 구조와 비례, 기능성이 이때 결정되며, 작은 오차 하나가 전체 실루엣을 무너뜨릴 수 있다.

 

 

▲ 옷 한 벌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기획에서 착용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코스다.   © TIN뉴스

 

봉제와 가공은 메인 디시다. 기술과 숙련도가 가장 집중되는 구간으로, 옷의 완성도와 브랜드 신뢰도를 직접적으로 좌우한다.

 

마지막 피팅과 마감, 스타일링은 디저트이자 플레이팅이다. 옷을 ‘입는 경험’으로 완성시키는 단계다.

 

결국 옷 한 벌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기획에서 착용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코스다. 각 단계가 조화롭게 이어질 때 비로소 브랜드의 철학과 미학이 온전히 전달된다.

 

소비자가 옷을 입었을 때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의복은 단순한 기능적 가치를 넘어선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식당은 오래갈 수 없다. 반면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비법을 가진 식당은 50년, 100년의 전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영화 속 주방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총주방장부터 수습 요리사, 파티셰, 홀 매니저까지.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완벽히 호흡할 때 비로소 한 접시의 감동이 완성된다.

 

우리 섬유패션산업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스트림이 제 역할을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남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섬유패션산업에도 미슐랭 가이드가 있다면, 우리는 과연 몇 스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김상현 취재팀장 tinnews@tinnews.co.kr

섬유패션산업 발전과 함께하는 경제전문 언론 TIN뉴스 구독신청 >

이 기사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인터넷 신문사 'TIN뉴스' 발전에 쓰여집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포토뉴스
세터, 배우 신예은 발탁…‘젠지 공략’
1/2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