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에서 에너지 관련 학문을 가르치는 모 교수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정부가 AI산업의 노에 톱질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부의 전기 등 에너지 정책이 AI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전력 부족이 AI 확장의 최대 제약 요인”이라고 강조하며, “현재 우리가 가진 GPU를 모두 가동할 수 없다, 꽂을 곳이 없고, 전력이 데이터센터 셀(Shell)이 부족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는 보유 중인 AI용 GPU를 창고에 두고도 전력이 부족해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도 AI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올해 100조 원 예산을 투입한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 CEO의 말처럼 AI산업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성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반도체 공장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50년경 최대 약 10~16GW(기가와트) 수준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최대 전력 수요(97GW)의 약 16.5%에 달하는 규모다.
당초 이전은 없다고 선을 그었던 청와대가 다시 이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관련 업계의 속을 태우고 있다. 그간 에너지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다 정책 기조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발전 가동이 중단됐던 당시 연료 원가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전기료 인상은 없었다. 그리고 2022년 국제 LNG 가격이 2배 폭등했음에도 5월까지 요금 인상은 단 한차례에 그쳤다. 연료가격 급등에 발전 원가와 전기요금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이는 고스란히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로 이어졌다. 결국 윤석열 정부 들어 요금 폭탄 사대를 맞았다.
정부는 한전 정상화를 위해 2022년부터 총 7차례 요금을 인상했지만 표심을 우려해 마지막 두 차례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했다. 다행히 현 정부가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관련 대학 모 교수는 “정치가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처럼 정치가 개입하면서 발전 원가 상승, 산업용 전기요금의 편파적 인상은 국내 산업 경쟁력 하락과 더 나아가 제조업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집중적인 인상은 한전의 부채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며, 기업들이 높은 전기요금 부담을 덜기 위해 자가발전, 전력 직구입 등을 통해 한전과의 거래를 끊으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라며 “한전의 부채가 해결되지 않으면 송전망 확충 등에 차질에 생겨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확대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돈으로 주택용·농사용 적자 메우는 한전
본격적으로 논의할 문제는 산업용 전기요금이다. 연말이면 내년도 전기요금 인상률은 기업들의 관심사다. 특히 전력 소모가 많은 제조기업은 더욱 예민하다. 단순히 산업용 전기요금이 비싸다는 문제가 아니다.
주택용 전기요금과 산업용 전기요금 간 가격 역전 현상이 문제다. 산업용 181원/㎾h, 가정용 159원㎾h, 농사용 88원㎾h로, 산업용이 가정용보다 22원㎾h 더 높다. 이는 원가주의가 훼손된 기형적인 가격 역전현상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통상적으로 공급원가 낮은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원이나 비싼 가격 역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회수율이 낮은 주택·농사용 전기요금 부담을 산업계가 떠안고 있는 비성장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주요국 전기요금(2024년 12월 기준)을 비교해도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보다 높은 국가는 한국(산업용 190.4원/㎾h, 주택용 152원/㎾h)과 중국(산업용 129.4원/㎾h, 주택용 112.1원/㎾h) 정도다. 미국은 산업용 전기요금 121.5원/원/㎾h:주택용 216.5원/㎾h, 그리고 유럽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역시 산업용 전기요금 197.1원/㎾h, 주택용은 312.4원/㎾h다.
더구나 2013년 원가 유사성을 근거로 통합됐던 산업용(을)과 일반용(을)이 최근 산업용 위 인상으로 다시 분리됐다. 이는 동일한 고압A 전력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산업용이 일반용보다 ㎾h당 약 23.6원(10.6%) 더 비싼 차별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철강,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제조원가 중 전력비중은 10~30%를 차지한다. 2023년 기준 제조 업종별 총비용대비 전력비중은 살펴보면 화학, 시멘트, 철강 등 주요 기초 소재산업의 순위가 가장 높다. 제조업 평균(1.86%)을 상회하는 업종만 26개(총 85업종)다. 이 중 ▲화학섬유제조업의 전력비중은 5.85%(3위)로 2023년과 비교해 26.7% 급증했다. ▲방적 및 가공사 제조업(5.60%(6위))과 ▲섬유제품 염색·정리 및 마무리 가공업(4.88%(7위))은 각각 9.5%, 18.5% 급증했다.
주택용 전기와의 가격 역전 그리고 가파른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은 곧 국내 제조산업의 이탈 즉 해외 이전을 가속화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전력 개선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미 전기요금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에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단언한다.
중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매우 낮다. 한국의 전국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179.2원/㎾h’, 중국 전체 평균 ‘26.7원/㎾h’다. 특히 중국 주요 산업단지가 위치한 주요 성의 경우 ▲장쑤성 84.6원/㎾h ▲간쑤성 49.2원/㎾h이다. 중국의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의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유럽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용 위주의 전기요금 인상은 전력시장의 균열을 가속화시킨다고 경고했다. 실제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 주로 이전을 결정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값싼 전기요금이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의 원가회수율은 130%로 추정된다. 100% 이상이면 한전이 전기를 원가보다 비싸게 팔았다는 의미다. 아울러 기업이 낸 돈으로 주택용(가정용) 전기 적자를 메우는 셈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우리 경제의 1/3을 떠받치는 제조업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대부분이다. 이는 곧 제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전기요금 납부액, 2020년 vs 2024년 대비 36.4% 급증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 응답기업의 2022년 대비 2024년 전기요금 납부액은 481억5,300만 원에서 2024년 656억6,900만 원으로 36.4% 증가했다. 매출액 대비 전기요금 비중은 2022년 7.6%에서 2024년 10.7%로 3.1%p 상승했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제도 개선 과제를 제안했다. ① 실제 수요에 맞는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 개선이다. 평일 전력 수요를 토요일로 분산하고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를 위해 중소기업에 한해 한시적(2018년 1년간)으로 시행했던 ‘토요일 경부하 요금제(토요일 일정 시간대에 사용하는 전기요금 인하)’를 한시적(3년)으로 재운영하고, 적용대상을 산업용 전체로 확대하는 안이다.
아울러 계절별 전력 수요를 고려해 6월과 11월은 여름·겨울철 요금 대신 봄·가을철 요금을 적용해줄 것을 제안했다. 현재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겨울철(6~8월, 11~2월)은 높은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전력소비가 적은 봄·가을철(3~5월, 9~10월)은 낮은 요금이 적용된다.
② 부하율이 안정적인 업종에 대한 별도 요금제 시행이다. 전력 부하율이 안정적인 업종·기업은 평균 전력 소비량과 최대 전력소비량의 차이가 적어 전력수요 예측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가전력수급에 대한 안정화 기여도를 고려해 별도 요금제 신설 또는 요금을 할인해달라는 제안이다.
③ 산업용 전기 기본요금 부과방식 개선이다. 산업용 전기 기본요금은 현재 직전 12개월 기간 내 12~2월(겨울철), 7~9월(여름철), 검침당월 중 가장 큰 최대수요전력 기준으로 책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검침당월의 최대수요전력을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부과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 주 4.5일제, 사회적 합의가 우선
정부가 ‘워라벨+4.5프로젝트’로 주 4.5일제 시범 도입을 추진 중이다.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줄이는 기업에 장려금과 채용 지원 제공을 약속하고 있다. 예산은 약 276억 원 규모. 노사 합의로 도입하는 중소·중견기업 약 150~200곳이 대상이다. 운영 모델은 ▲오후 반차형 ▲주 35~36시간형 ▲격주 4일제 등으로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지원은 1인당 장려금과 신규 채용 시 월 60~80만 원 수준의 채용 장려금, 맞춤형 컨설팅 등이 포함된다. 이미 일부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시범 시행 중이다.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주 4.5일제를 시행 중인 하남시의 경우 금요일 1시 퇴근 형태다.
정부의 주 4.5일제 도입은 제조업 기반 중견·중소기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2022년 기준 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 비중은 99% 이상으로 약 800만 개 이상, 종사자는 전체의 81%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의 고용창출율은 69%, 생산/부가가치 30~40%대다. 동시에 중견기업의 제조업 비중은 2023년 기준 36%다.
제조업의 경쟁력은 적시에 제품을 납품·수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행 중인 주 52시간(주 5일) 근무제 역시 제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생산현장에선 주문이 있어도 토요일 공동 가동을 꺼려한다. 토요일 근무 시 2배의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인데, 사업주들은 “토요일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라고 하소연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주 5일에서 주 4.5일제 근무로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 중이다.
반면 일본은 2019년부터 시행해온 일본 근로자들의 통상 초과 근무시간은 월 45시간, 연 360시간제한을 뒤집는 정책 마련에 시동을 걸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지난해 10월 집권한 타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 같은 노동시간 규제에 따른 국내 산업 인력난 문제가 심각해지자 시간제한 규정을 완화해 일본 경제를 되살리고, 동시에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가 일하고 싶은 자율적 선택권을 돌려주겠다는 취지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일본 교토에서 4대째 료칸(일본 전통 숙박시설)을 운영 중인 업주는 “체크인 응대부터 침구 정리, 현지 전통요리 준비까지 할 일이 산더미인데 초과 근무에 대한 규정 때문에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해외 관광객 수는 지난해 약 4,270만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전년 수준과 비슷한 약 4.140만 명의 해외 관광객들이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관광 수요가 늘고 관광산업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근무시간 제한 규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
실제 일본은행(BOJ)이 최근 발표한 단기경제관측조사 결과, 일본 기업들은 최근 34년 만에 가장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으로 임금과 자재비가 오르면서 기업들은 신규 인력 고용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도쿄쇼코리시처 조사 결과, 지난해 인력부족을 이유로 파산을 신청한 일본 기업만 397개로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가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본 근로자들 중 평균 연간 소득의 약 6%를 초과 근무 수당에 의존하고 있다. 초과 근무시간이 제한되면서 월급도 줄어든 것이다. 일본 지역 언론의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다카이치 총리의 계획을 지지했고, 특히 연령별로는 18~29세에서의 다카이치 총리 지지율이 80%까지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 역시 코로나 19 이후 과도기를 거치며, 유연성을 강조한 근무 환경으로 전환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근로시간을 연장(주 40시간 이상)을 유지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소득을 늘리고 고용불안 해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들어 팁 소득 및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연방 세금 공제(최대 2만5,000달러) 지침이 발표되어 주당 근무 시간이 긴 근로자의 실질 소득이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유럽 일부 국가들은 근로시간 축소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해 신중한 접근과 동시에 유연성을 확대하는 쌍방향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스는 2024년 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하루 2시간 추가 근무나 8시간 추가 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새 노동법을 마련하고 2024년 7월부터 ‘주 6일제 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독일은 2년 연속 역성장 탈피를 위해 2024년 공휴일을 축소했다. OECD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독일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1,343시간으로 주요국 중 가장 짧다. 독일 메르츠 총리와 집권 여당은 하루 최대 8시간으로 정한 기존 법정 근로시간 대신 EU 기준인 ‘주당 48시간’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성준 기자 tinnews@tinnews.co.kr <저작권자 ⓒ TIN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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