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에 걸린 아이가 병원을 찾습니다. “장염입니다.” 의사가 말하면, 아이 엄마는 밖에서 먹은 것을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설사의 원인이 집밥일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엄마는 황당한 표정을 짓습니다. “내 음식을 비난해?”라는 불쾌함입니다.

 

작년 여름, 햄버거를 먹고 장출혈성대장균에 감염됐다며 소비자들이 햄버거 회사를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4건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햄버거 회사를 비난했습니다. 그 비난에는 “집밥은 몸에 좋고 바깥 음식은 나쁘다”는 종교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열 끼 식사 중 햄버거를 한 끼 먹고 나머지 아홉 끼를 집밥을 먹고 장염에 걸렸다면, ‘용의자’에는 집밥과 햄버거가 모두 들어가야 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햄버거가 주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햄버거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당한 셈입니다. 몇 달 후 고소를 당한 햄버거 회사를 압수수색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합리적이라면 사건 피해자 아이들의 집 냉장고와 주방도 확인해봐야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찌개를 냄비째 네댓 번 다시 데워먹는 일이 허다하고, 반찬통에 담긴 김치에 온 가족이 젓가락질을 한 후 식탁에 몇 시간씩 방치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 냉동실은 버려야 할 식재료의 ‘안치실’입니다.

 

만약 식품위생법이 가정에도 적용된다면, 우리 집은 365일 적발 대상일 것입니다. 만일 햄버거 패티가 위험한 식재료라면, 지난 추석 때 시골집에 방문한 후 어머니께서 싸주신 전과 동그랑땡은 더 위험한 식재료입니다.

 

식재료 관련하여 세균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람도 여러 인종이 있듯 대장균도 여러 균종이 존재합니다. 그중 소의 장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사람에게선 장출혈을 일으키고 심하면 신장까지 망가뜨리는 악당 같은 놈이 있습니다.

 

▲ 햄버거병의 주범으로 유명해진 ‘대장균 O157:H7’(장출혈성대장균)     © TIN뉴스

 

햄버거병의 주범으로 유명해진 이 균의 이름은 ‘대장균 O157:H7’(장출혈성대장균)입니다. 이 대장균은 섭씨 70도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식재료를 충분히 익히거나 깨끗이 씻어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약 50~100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합니다. 흔한 질환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 발병률을 보면 햄버거로 인한 감염보다는 채소나 생야채주스를 먹고 감염된 빈도가 훨씬 높습니다. 2011년 독일에서의 채소에 의한 2000명의 집단 감염, 2016년 오키나와에서의 사탕수수 주스에 의한 35명 감염 사례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채소병’, ‘생야채주스병’이라 하지 않고 ‘햄버거병’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채소, 생야채주스는 몸에 좋은 음식이고, 햄버거는 나쁜 음식이라는 편견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각종 야채와 고기류가 들어가는 구절판과 햄버거, 피자는 사실 재료가 거의 비슷합니다. 각종 야채와 고기를 밀전병에 싸 먹는지, 빵 사이에 넣어 먹는지, 도우 위에 얹어 먹는지의 시각적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집에서 만든 구절판은 음양오행의 이치가 담긴 완벽한 음식이고, 똑같은 재료로 만든 햄버거는 장출혈성대장균을 옮길 수 있는 나쁜 음식이라는 프레임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21세기는 먹거리의 천국입니다. 집밥은 무조건 옳고 사 먹는 음식은 무조건 비위생적이라는 생각, 우리나라 전통 음식은 건강식이고 서구 음식은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 천연이 좋고 인스턴트는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는 생각 등, 세상 음식을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으로 편을 갈라버리면 먹고 사는 게 매우 불편해집니다.

 

 

▲   배상준 외과전문의  ©TIN 뉴스

 

 

 

  

배상준  

대아의료재단 한도병원  

 

외과 전문의  

bestsurgeon.kr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포토뉴스
디스커버리 ‘고윤정 크롭 티셔츠’
1/4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