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료 관람과 한복

심상보 건국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TIN뉴스 | 기사입력 2018/09/27 [13:26]

▲ 경복궁 등 서울 시내 고궁에서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TIN뉴스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은 우리민족 큰 명절인 추석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명절이 되어도 거리에서 한복을 보기 어렵다. 설에도 TV프로에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한복을 입지 일반 가정에서는 한복을 입지 않는다.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한복은 결혼식장에서 화촉에 불을 붙이는 양가 어머님의 복장이나 그나마 명절에 어린아이들의 재롱을 보려고 입힌 한복정도다.

 

그 외에 가장 한복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고궁이다. 요즘 고궁에는 젊은이들과 외국관광객이 한복대여점에서 빌린 화려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 이 대여한복에 대한 기사를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다. 

 

논란의 시작은 종로구청의 ‘퓨전한복 고궁 무료입장 혜택 폐지’ 주장이다. 전통한복이 아닌 한복은 무료입장 혜택을 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 건에 대하여 종로구에서 포럼도 개최했다고 하는데 ‘전통한복이 아니면 고궁 무료입장 혜택을 제한한다’는 내용과, ‘아직 실무부서에서 협의한 것은 없다’는 내용의 기사가 모두 있어서 결과를 모르겠다.

 

▲  한복의 전통적인 모습을 변형해 화려하게 만든 퓨전한복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청에서 우리 옷 제대로 입기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TIN뉴스

 

사실 우리나라 고궁에서 관광객들이 빌려 입은 한복은 전통적인 형태의 한복은 아니다. 반짝이는 자수와 서양의 패티코트 같은 속치마, 허리에 두른 커다란 리본까지 전통한복의 디테일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한복이고 어디까지가 한복이 아닌지 어떤 기준으로 구별할 것인가?

 

난 요즘 새로운 강의를 맡았다. 민속복식에 대한 강의다. 내가 발표한 논문들이 한중일 전통복식에 대한 내용이어서 이런 강의를 맡겨 주신 듯하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민속복식을 전공하거나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다. 그 중에는 유학생도 많다.

 

나는 이들에게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우리나라 고궁 주변에서 빌려주는 한복이 너희들이 생각하는 한복의 형태와 같으냐고 물었다. 모두 다 그렇다고 했다. 혹시 중국이나 일본의 민속복식과 비슷하냐고 다시 물어보니 전혀 다르다고 했다.

 

나는 젊은 유학생들과 대화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대여한복을 입고 고궁에 간 적이 있고, 모두 화려한 한복을 빌렸다. 화려한 한복을 빌린 이유는 사진이 잘 나와서다. 예스러운 건물과 화려한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설명도 했다.

 

예전에는 고궁에서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볼 수 없었다. 나는 한복을 고궁에서 입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에 유행하던 젊은이들의 ‘한복놀이’가 발단이라고 생각한다. 한복을 입고 고궁에서 사진 찍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 됐다.

 

이후 좀 더 예쁜 사진을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은 한복에 장식을 더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입는 방식을 고안하여 고궁과 북촌, 서촌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고, SNS에 올렸다. 이즈음 ‘한복 무료 관람’같은 정부정책이 시행되면서 일반 관광객까지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 찍는 것이 유행이 됐다.

 

▲  주로 퓨전 한복을 전시하고 대여해주는 경복궁 인근의 체험 한복 매장   © TIN뉴스

 

지금 고궁을 누비는 한복은 한복전문가의 디자인도 아니고 패션전문가의 디자인도 아니다. 그냥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놀이’가 발전한 것이다.

 

새로운 문화는 기존의 가치관과 다른 젊은이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고궁의 한복이 활기찬 이유는 젊은 세대의 생각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이 한복을 개량한복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인사동의 칙칙한 색상의 노동복 같은 한복과 지금 젊은이들의 한복은 터럭만큼도 비슷하지 않다.

 

아마 한복 무료 관람에 대한 포럼에 실제로 한복을 입는 젊은이는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면 전통이 아니라고 아집을 부리는 전문가와 무엇을 팔던 돈만 벌면 되는 장사치와 어떤 것을 선택해야 국민의 호응을 얻어낼까만 고민하는 공무원이 모여서 좋은 결과를 내기는 매우 어렵다.

 

그까짓 고궁 입장료 몇 천원을 빌미로 한복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고궁 입장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복의 이미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 서울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인사동, 무계원, 북촌 등 종로구 일대에서 열리는 종로한복축제  © TIN뉴스

 

스타일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스타일의 정체성이 명확해야 한다. 한복이 현대 한복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전통복식은 어느 시기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신분에 사람이 입었던 복식인지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민속복은 전통복식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민속복은 어느 민족이 습관적으로 입어온 복식으로 그 민족을 포함한 다른 민족들이 관념 속에서 떠올리는 그 복식의 형태가 민속복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복식인 한복은 1900년대의 한반도에서 우리민족이 보편적으로 입었던 복식이지만 민속복으로써 한복은 현대인들이 한복으로 인식하는 바로 그 복식이다. 따라서 현대 한복은 현대인의 인식에서 한민족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한복이 과거의 어느 시대의 복식과 무엇이 다른지를 찾지 말고, 어떤 요소가 한복을 규정하는 특징인지 범위를 정해서 이러한 특징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한복 디자인이 발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 2018 F/W 서울패션위크에서 오프닝쇼로 선보인 김혜순 디자이너의 한복 패션쇼    © TIN뉴스

 

현대 패션은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이나, 완벽한 클래식을 원하지 않는다. 익숙한 디자인의 콜라보를 넘어서 유명 디자이너의 스핀오프(spin-off; 아류) 스타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더해지면 크리에이터로 인정해주는, 익숙함과 변화를 동시에 요구하는 시대다.

 

한복이 세계적인 스타일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야 한다. 다양한 디자인 요소가 한복과 결합될 수 있어야 하고 현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한복의 형태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만 한복의 품위는 지켜져야 한다. 한복의 품위는 우리나라의 품위이기 때문이다. 전통복식으로의 한복은 전통적인 형태와 구성, 착용 방법을 규정하여 한복 대여소에서 일본의 기츠케(着付け; 기모노를 입는 기술)처럼 정해진 규정에 따라 손님에게 한복 착용방식과 장신구를 제안해야 한다.

 

현대 한복도 나름의 규정을 정해 한복의 품위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대를 평가하면 당연히 오류가 생긴다. 현대 한복은 현재의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민족의 복식인 한복이 세계인이 모두 사랑하는 아름답고 즐거운 생활 속의 한복으로 발전하기 바란다.

 

▲ 심상보 건국대 교수  ©TIN뉴스

 

 

 

 

 심상보

피리엔콤마 대표

건국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주)청향엔에프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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